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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요구르트 아줌마의 경쟁자는 누구일까요?" 외부 강의 첫머리 필자가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뜬금없는 질문에 다들 난감해서인지 눈만 꿈뻑꿈뻑 한다. 거듭된 필자의 추궁에 하나둘 수강생의 닫힌 입이 열린다.

"우유 배달 청년이나 뭐, 요플레 아줌마?", "생과일이나 야채즙 아줌마, 다른 음료를 배달하는 사람?", "주변 요구르트가 안 팔리니 단지 내 편의점이죠.", "……".

"또 없을까요?"하고 재촉하다보면 급기야 이런 답변까지 튀어 나온다. "요구르트 아줌마의 경쟁자는 야쿠르트 아줌마 아닙니까?" 잠시 강의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덕분에 필자도 한껏 미소를 머금는다. (참고로 '야쿠르트 아줌마'는 '프레시 매니저'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따금씩 아이들의 '입맛'이라 대답하는 놀라운 수강생도 있다. 입맛 변화는 경쟁구도를 단숨에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위 답변처럼 '요구르트 vs 우유'나 '요구르트 vs 기타 음료' 그리고 아이들의 입맛과 같은 경쟁환경도 충분히 예상된다. 하나 오늘날의 경쟁구도는 그렇게 단순·명쾌하지만은 않다. 


빠듯해진 살림 가계부 지출 항목서
학습지보다 요구르트 '첫 순삭' 대상
작금의 경쟁 과거와 전혀 다른 이동


좀 암울한 상상을 해보자. 어쩜 누구에겐 실화일 수도 있다. 남편은 직장생활 10년을 갓 넘긴 4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간 결근은커녕 지각 한번 없는 성실함에다 꼼꼼한 업무처리 덕분에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랬던 남편이 어느 날 직장에서 명퇴 선고를 받는다. 평소 남 얘기라 흘려듣던 상황이 우리 가정의 현실이 됐다.

가진 재산이라야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아파트는 그간 힘들게 부어온 적금과 은행 대출을 합쳐 지난해 겨우 마련했다. 예고된 명퇴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으련만,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가장의 퇴사에 본인은 물론 애면글면 살아온 아내에겐 절망이요 공포 그 자체다.

그날 밤 부부는 아이를 재우곤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아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나온 아내 손엔 그간 꼼꼼히 기록해온 가계부가 들려있다. 아내의 단호한 한 마디가 정적을 깬다. "일단, (지출부터) 줄여요." 아내는 가계부를 펼쳤다. 그간 지출된 항목을 하나씩 백지에 옮겨 적는다. 이윽고 한 항목에서 아내의 손끝이 머문다. 집게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다. "이 둘 중 하나는 끊어요." 아내가 가리킨 건 매월 아이 몫으로 지출되는 항목이다. 하나는 아이의 건강을 고려해 받아먹는 '요구르트'였고, 또 하나는 아이의 학습부진을 만회코자 받아보던 '학습지'였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이르길, "우리란 존재는 우리가 한 선택의 결과다(We are our choices)"라고 했다.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는 선택의 연속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희망을 이끌어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대는 요구르트와 학습지, 어느 쪽을 끊을 건가?

위 질문을 대한민국 사회에 던진다는 건 솔직히 우문(愚問)이다. 옆집 아줌마랑 수다를 떨다 우리 아이 수학점수가 95점인데 그 집 아이가 98점이란 얘길 듣는 날엔 엄마 심장의 펌프질이 순간 멈춰 선다. 옆집 아이는 펜대 돌리는데, 내 아이가 용광로 앞에서 뻘뻘 땀 흘리는 꼴은 못 본다는 거다.

레고놀이 할 아이들이 학원에 모여
초경쟁시대의 상대 규명 점점 난해


하여 우리 학부모들은 분명 학습지보다는 요구르트를 끊을 게다. 아내가 더 적극적이다. 아이 건강이야 굳이 요구르트가 아니라도 간식을 직접 마련하거나 삼시 세끼에 좀 더 신경을 쓰거나 하면 된다. 그러나 학습지만큼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아이는 엄마아빠를 손곱만큼도 선생님으로 봐주질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요구르트는 가계부 지출항목에서 '순삭' 당한다.

흔히 '경쟁자'하면, 갤럭시 vs 아이폰, 롯데시네마 vs CGV, 하이트진로 vs 롯데칠성음료 등을 떠올린다. 작금의 경쟁은 과거 양상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이동 중이다. 한의사는 홍삼·비아그라, 나이키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 레고는 우리의 교육열과 경쟁한다. 방과 후 레고를 갖고 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원에 모여 있다. 초경쟁(hyper-competition) 시대다. 그래 경쟁자의 실체나 경쟁구도(환경)를 규명하기가 점점 난해해지는 이유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