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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가 일으킨 일파가 만파로 번지고 있다. 알려진 대로 한 카페 사장이 웹툰작가 사인회 예약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는 사과 공지문을 올렸다. 이에 누리꾼들이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냐"며 '심심한 사과'에 분통을 터트렸던 모양이다.

온라인에서 먼저 시비가 일었다.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한자어 '심심(甚深)한'을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의 순우리말 '심심한'으로 오독했다는 조롱이었다.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언론이 이를 냉큼 받아 '문해력'을 공론장에 올렸다. '가제(假題)'를 '랍스터'로,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유선상(有線上)'을 '사람 이름'으로 오인한 사례 등을 줄줄이 추가하며 저조한 문해력을 문제 삼았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위대한 문자이지만, 표기하는 단어와 어휘의 태반이 한자어라 동음이의어가 넘쳐난다. 수많은 한자어를 모조리 외우지 않는 한 지식인, 전문가들도 자기 전공분야 밖에서는 전체 문장의 맥락으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심한 사과'만 해도 그렇다. '심심'뿐 아니라 '사과' 역시 하나의 동음(同音)에 이의(異意)가 여럿이다. '사과(謝過)'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고, '사과(赦過)'는 잘못을 용서한다는 의미이며, '사과(沙果)'는 과일이다.

카페 주인이 공개적으로 '심심(甚深)한 사과(謝過)'를 할 정도면 고객의 불편과 피해가 심각했을 것이다. 분이 안 풀려 "안 심심(甚深)하다" 받아칠 수 있고, "심심한(맛이 싱겁다) 사과(沙果)"에 빗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이런 의미였다면 오히려 대단한 문해력이다.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모르면 사실상 문맹이다. 어려운 용어로 계층을 가르는 권위와 권력은 반민주적이다. 언어의 불통으로 사회적 소통을 제한한다. '가제(假題)', '사흘', '금일'의 문제는 교육으로 해결하고, 법률·행정 등 권력의 용어는 대중적으로 고쳐야 한다.

다만 '심심한 사과'가 여기에 들어맞는 사례인지는 의문이다. 문자는 의식이고 생각이며 사상이다. 동음이의어의 나라에서 타인의 문자를 자의(恣意)적으로 단정해 논란을 벌이면 위험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