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활용군(軍)용지'는 군이 현재 쓰지 않고 있으면서, 매각 등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땅을 말한다. 국방부의 국방혁신 4.0 추진 등 군의 과학화·병력감축 등의 여파로 군부대 통폐합·이전이 추진 중인 가운데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용도 폐기된 군부대 부지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민간이양이나 공공목적의 이용을 위한 노력은 미미하다. 잘 활용하면 지역발전을 위한 자원이 되겠지만 관리 인력이 없고 시설도 노후해 자칫 슬럼화, 지역의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늘어나고 있는 경기북부의 미활용군용지에 대해 짚어보고 바람직한 활용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누구 하나 풀 깎는 이도 없이 10년도 넘었지.
음침하고 지저분하게 동네 분위기 해치면서
왜 저렇게 놔두는지…
26일 의정부시 신곡동의 한 자연부락에서 만난 주민 박모(70)씨는 수풀이 우거진 야산 한쪽을 가리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한때 방공대대가 주둔했다가 이전하면서 더는 쓰지 않게 된 군부대 진입로가 있었다.
성인 남자 키 높이를 훌쩍 넘기도록 자란 풀과 전봇대를 얼기설기 뒤덮은 덩굴, 진입로 바닥을 뒤덮은 이끼는 해당 군 시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돼왔는지 짐작게 했다.
북부 접경지 집중 '군사기밀' 이유 관리 손길 안 닿아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 "활용 방법 고민과 노력 필요"
한때 군용차가 다니던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 보니 바닥에 낙엽과 쓰레기가 뒹굴었다. 위병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입구에 다다르자 주변 분위기는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과거 설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통제 테이프는 오래전 떨어졌는지 잡풀과 뒤엉켜 있었고, 부대 현판이 있었던 자리는 뜯어진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출입과 촬영을 금한다는 경고문과 녹슨 철조망, 차량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만이 이곳에 군부대가 있었음을 나타냈다.
한 정비중대가 인근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폐쇄된 파주시 법원읍의 군부대 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군 장병과 장비가 빠져나간 텅 빈 연병장엔 풀이 무성했고 간이 창고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군부대 입구 한쪽엔 도로 공사를 하면서 나온 자갈과 흙더미가 쌓여있었다.
이처럼 군이 조직을 재·개편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부지를 '미활용군용지'라고 한다.
미활용군용지는 도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대부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북부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된다. 군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미활용군용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선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CC(폐쇄회로)TV는커녕 가로등도 없이 야산 형태로 버려둬 우범지대가 된 곳도 많지만, 국방부 소유이다 보니 관리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미활용군용지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방부는 국방 태세 전반을 재설계하고, AI 과학기술강군 육성한다는 취지로 국방혁신 4.0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엔 첨단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과학적 훈련 및 구조 개편, 산재한 군사시설을 통·폐합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최소화한다는 과제목표가 포함됐다. 국방부가 계획을 추진하려면 일부 부대 재배치와 방치된 군사시설의 정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자연스럽게 미활용군용지가 다수 발생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경기연구원이 연천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는 2024년까지 약 985만920㎡의 미활용군용지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체 군 면적의 약 94%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연천군에서 이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의정부시의 경우 이전하거나 폐쇄된 군부대 6곳에서 32만9천590㎡가 현재 잠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지역발전에 있어 그동안은 미활용군용지에 대한 중요도나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향후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지역의 실정을 반영해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미활용군용지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오랫동안 피해 참아낸 주민과 '민관군 거버넌스' 구축해야")
/하지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