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의 혈액량은 몸무게의 7~8%인데, 체중이 60~80㎏인 성인 남성 기준으로 약 5ℓ정도의 양이다. 혈액이 공급하는 영양과 산소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어, 과다출혈로 혈액의 3분의 1 이상을 잃으면 죽는다. 사고현장에서 지혈이 가장 중요한 응급조치이고, 혈액 수혈 없는 수술실은 상상할 수 없다. 헌혈은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봉사이다.
반려동물도 수술과 질병 치료 과정에서 수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헌혈과 수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과 반려묘들이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드물거니와, 그런 상황이 닥쳐도 수혈까지 용인할 반려문화는 아니었다.
시대와 문화가 확 달라졌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가 600만가구를 넘고, 반려견이 600만마리에 육박하고 반려묘도 200만마리를 넘겼다는 통계다.(KB금융그룹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 폭증하는 반려인구를 겨냥해 정당들이 동물권을 주장하고 개식용 반대를 강조하는 시대이다. 무엇보다 반려인과 반려동물 사이의 교감과 유대가 '가족' 수준으로 높아졌다.
'공혈견 (供血犬)'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배경이다. 공혈견은 문자 그대로 피를 공급하는 개, 특수목적견이다. 반려견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잡자, 수술은 물론 혈소판 부족, 백혈병 등 수혈이 필수인 반려견 질병에 대한 치료 수요도 폭증했다. 공혈견은 반려견 치료용 혈액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그런데 공혈견의 견생(犬生)이 식용견만큼이나 기구하다. 다른 개를 살리려 평생 뜬장에 갇혀 혈액을 채취당하니, 식용견 못지 않은 일방적 희생이다. 대안으로 헌혈견 캠페인이 한창이다. 반려견의 헌혈을 일상화하자는 얘기다. 문제는 국내 반려견 80% 안팎이 헌혈 조건에서 벗어난 소형견인 점이다. 공혈견이든 헌혈견이든 2~8살 사이에 체중은 25㎏ 이상이고 혈액에 문제가 없어야 채혈이 가능하다.
각종 개물림 사고가 빈발한 탓인지 반려인 사이에서도 대형견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높았다. 우리 집 막내 몰티즈, 푸들, 치와와, 시추를 살려줄 수 있는 헌혈견으로 대형견과 견주를 우러러 볼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공혈견들의 복지 향상은 덤일테고.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