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역사적 주사위를 던진 특별한 인물을 만나 진로를 바꾼다. 우리 시대에서 그 정도 인물을 꼽자면 단연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우선이다. 그가 주도했던 세계사의 전환을 직접 목격했던 역사적 체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1985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최고 권력인 공산당 서기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할 때 표방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로 냉전을 종식하고 소련을 해체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은 애초에 한계에 직면한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체제를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였다. 시장경제의 부분적 허용과 사유재산 제도를 도입했고 언론자유를 허용했다. 안정적인 개혁, 개방을 위해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핵 군축 조약을 체결하고,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단행했다. 1989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냉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시켰다.
소련 위성국가들에 대한 정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한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는 세계지도를 바꾸었다.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민주국가로 전환됐고, 독일이 통일됐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들이 속속 독립을 선언했다. 소련 최초의 대통령이 됐지만 개혁, 개방의 반동으로 소련은 급격히 해체된다. 결국 공산당 잔존 세력의 쿠데타를 평화적으로 진압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 1991년 소련을 해체하자,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한다.
자유진영 국민들은 그를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사랑했다. 우리에게 끼친 영향도 각별하다. 1990년 한·소 수교로 북방외교의 활로가 열렸고, 소련이라는 현관을 통해 중국은 물론 구 공산권 국가들로 외교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정작 러시아에서는 강력했던 소련 연방 해체의 원흉으로 지목돼 푸대접을 받아 말년이 외로웠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초래한 세계질서의 변화는 고르바초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라는 평가와 분석이 우세하다. 역사가 사람을 부리는 방식일테다.
역사는 반동에 의해 반복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전체주의의 강화, 북한의 핵무장 등 고르바초프의 유산을 위협하는 역사적 반동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30일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역사의 저편에 영면했다.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굿바이 '고르비'.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