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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다. 7월부터 9월까지 20개 이상이 발생해 많은 피해를 남기고 소멸한다.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한반도는 단군 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조선왕조실록엔 대풍(大風) 피해 기록만 700여건에 달할 정도이다. 일본 정벌에 나선 여몽연합함대를 휩쓸어버린 태풍을 일본은 신풍(神風·가미카제)으로 믿었다.

우리 시대에 경험한 가장 강력한 태풍들은 공교롭게 추석 연휴를 강타했다. 1959년 추석(9월 17일)에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한 태풍 '사라'는 전설적 피해를 남겼다. 전후 복구에 안간힘을 쓰던 나라와 국민을 매몰차게 할퀴었다.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조촐한 차례상을 차렸던 국민 849명이 사망했고, 37만명 이상이 이재민이 됐다. 부산은 고립됐고 재산 피해는 정부 예산의 15%에 달했다. 사라가 지금껏 태풍 트라우마의 대명사로 남은 까닭이다.

2003년 추석 연휴를 강타한 '매미'는 최대순간풍속 60m/s를 기록한 살인적인 강풍으로 남해안 도시와 제주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산항 타워크레인들이 줄줄이 넘어갔고, 제주도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간판을 비롯한 인공구조들이 도시의 하늘을 날았다. 사망·실종자 130여명에 4조2천억원의 피해를 남겼다. 매미는 바로 전 해에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며 역대 최악의 재산피해(5조1천500억원)을 남긴 '루사'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았다. 루사와 매미가 얼마나 악랄했는지, 우리의 제안으로 두 이름은 태풍 명단에서 제명됐을 정도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힌남노'가 한반도 상륙 초읽기에 들어갔다. 기상청은 6일 오전 부산 앞바다 상륙을 예고했지만 제주에선 폭우로, 전국에선 날 선 바람으로 이미 징조는 강력하다. 중심기압과 최대풍속이 관측 이후 역대 최고인 슈퍼 태풍이라니 걱정이 크다. 과수 농가는 설익은 과일을 서둘러 따고, 남해안 포구마다 어선들을 뭍으로 인양하느라 분주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비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어야겠다.

바다 수온 변화로 추석 태풍이 잦아질 것이라 한다. 다만 올 추석은 고물가에 경제불황으로 분위기가 최악이다. 여기에 최악의 태풍이라니. 조상님들의 가호로 힌남노가 얌전하게 지나가기를 염원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