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은 때로 무용한 물음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학자·미학이론가·평론가 등의 도전적 시도에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처럼 예술은 번번이 그런 도전적 시도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예술의 속성이 원래 그러한데다 종래의 개념과 범주를 위반하고 넘어서는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상상력까지 가세하여 예술의 정의와 범주는 틀에 박힌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술을 지칭하는 '아트(art)'란 말의 다른 뜻이 기술인 것처럼 예술은 기술의 발전과 무관치 않다. 색채와 빛을 중시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도 화학공업의 발달에 따라 유화용 물감이 개발됐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음향기술이 없었다면 비틀즈나 BTS도 MP3도 없었을 것이고, 만일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오페라 가수의 아리아나 판소리 명창의 노래를 라이브로나 듣고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 TV 등 영상기술이 개발됐기에 백남준이나 줄리안 오피 같은 미디어아트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를 활용한 마이클 조이스의 '오후, 이야기' 같은 하이퍼텍스트문학이나, 테크노픽션 등의 디지털 문학도 IT와 인터넷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시도였다. 예술의 개념과 범주를 무너뜨리고 또 다시 세운 마르셀 뒤상의 '샘'이나 '자전거 바퀴'는 엉뚱함과 기발함 또는 상식과 편견의 틀을 깨뜨려버리는 예술의 본질과 도전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우려했던 태풍 힌남노가 빠르게 한반도를 지나간 지금 AI가 그린 그림 하나가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의 태풍을 불러왔다. 지난 달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 AI 프로그램 미드저니가 생성한(아직 이를 창작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림 '공간 오페라 극장'이 인간이 만든 작품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르자 예술의 개념과 범주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예술이 아니라 클릭으로 만든 디지털 기술에 불과하며, 스포츠 경기에 로봇을 투입한 격이라는 등 반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술이나 문학도 그 자신의 역사가 스스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가변적이고 인공적인 것이면서 또 늘 변화하고 확장되고 발전해왔다. 예술은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창의성의 영역인데, AI의 등장이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다. AI의 등장이 예술 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될지 당분간 더 지켜볼 일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