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성균관이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표준안의 기본 음식인 송편, 나물, 적(炙·구이), 김치, 과일, 술만으로 차려진 차례상은 매우 간소했다. 성균관은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대례필간(大禮必簡)을 간소한 차례상의 근거로 들었다.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대유학자 김장생의 '사계전서'를 인용해 전(煎)과 같이 기름에 지지거나 튀긴 음식을 올리는 것도 예가 아니라고 했다.
성균관의 차례 간소화 방안을 따르면 차례상만 조촐해지는 것이 아니다. 차례상에 음식을 놓는 법식인 진설(陳設)을 놓고도 다툴 일이 없어진다.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는 문헌에 없는 예법이니 편하게 올리면 된단다. 사진으로 지방(紙榜)을 대신해도 상관 없단다.
제사를 방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형법 158조)에 처할 정도로 제사는 우리 정신문화의 정수이다. 또 가장 격렬하게 변화 중인 문화이기도 하다. 고조부터 모시는 4대 봉사(奉祀)는 3대나 2대로 줄었다. 한·두 자녀 가정이 대세가 되면서 제사 문화의 중심인 장남·장손들이 없는 집도 많고, 상속 지분이 같아지면서 장남의 봉제사 의무감도 희박해졌다. 차례상 배달업체가 등장한 지 오래이고, 마음만 먹으면 모든 차례 음식을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MZ세대에겐 엄마가 앓았다던 명절 증후군이 요령부득일 테다.
성균관의 파격적인 차례 간소화 방안은 제사 문화를 보전하려 유교 예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성균관 차례상'을 차렸다간 추석 아침 이집저집에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어와 돔배기(상어고기)가 올라가야 하는 경상도 제사상처럼 문중과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차례상 문화를 고집하는 어르신들 또한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주머니 사정만큼 차례상이 초라해질까 걱정이던 서민들에겐 '성균관 차례상'이 위로가 될 수 있겠다.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이 인증(?)한 상차림이니 더욱 그렇다. '성균관 차례상'의 의미는 외양과 격식보다는 조상을 기리는 정성과 가족들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단한 시절이다. 차례 음식을 함께 하며 식구의 사랑으로 보름달만큼 배부른 한가위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