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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빅토리아는 1837년 백부(伯父)인 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901년 1월 사망 때까지 64년을 재임해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세기를 관통한 그의 시대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다. 양당제 의회 진영을 적절히 조율하며 정치 경제 등 여러 방면에 두루 치적을 남겼다.

1897년 버킹엄 궁에서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열렸다. 영국 식민지의 총리와 총독이 런던에 총출동했다. 조선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6개국 겸임공사인 민영환을 파견했다. 사절단 일행 5명은 3월 말 서울을 출발, 6월 초 런던에 도착했다. 6월 22일 기념식에 참석하고 7월 17일 귀국길에 올랐는데, 민영환은 3개월 노정을 '사구속초(使歐續草)'란 여행기로 남겼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9일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952년 25세에 왕위에 올라 70년을 재위했다.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을 넘어선 기간이다. '현대사 산증인과 작별하는 날, 하늘엔 무지개가 열렸고, 영국 국민들은 버킹엄 궁에 모여 추모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서거 이틀 전 여왕을 알현한 트러스 신임 총리는 "여왕은 영국의 정신이었다"고 했다.

여왕은 남편 필립공과 금실이 좋았다. 3남 1녀를 뒀다. 지난해 심장의 반쪽이 세상을 떠난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평생 반려자를 잃은 충격에 노구(老軀)를 추스르지 못했다. 한 여성으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맏아들(찰스 국왕)의 이혼과 재혼을 아픈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1999년 4월에 한국을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초청으로 3박4일을 머물렀다. 안동에 여장을 풀고 봉정사, 하회마을 등 명소를 둘러봤다. 하회마을 한옥을 방문했을 때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간 일화가 남는다. 서양에선 공개된 장소에서 발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데, 한국 문화를 존중한 배려였다고 한다. 방한 중 생일이 겹쳐 한식 정통 생일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선하다.

영국의 정신적 지주가 영면했다. '플래티넘 주빌리' 축복의 해에 돌연 영국민을 비탄에 빠뜨렸다. 영 연방뿐 아니라 온 세계가 추모의 대열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도 19일 영결식에 조문한다. 안식(安息)을 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