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포가 고향인 큰 형님도 안타까운 소식을 들고왔다. 식육점 냉장고가 쓸려갈 정도의 태풍 위력, 상인들이 추석 대목을 위해 떼어놓은 고기를 모두 포대에 버린 일, 상수도가 망가져 흙물이 쏟아져 나오고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인근 편의점 도시락이 동나는 등 힌남노가 지나갔다는 뉴스 이면에 감춰진 실상을 낱낱이 들려줬다. 지하주차장에서 인명피해가 난 그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소식, 그 아파트 옆 범람한 냉천의 정비사업은 수재의 원인을 두고 논쟁이 불붙었다.
그런데 이 어디에도 정치는 없었다. 추석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철저한 대비를 했었다. 야당의 당 대표 기소를 두고 추석까지도 수습되지 않은 여당의 자중지란을 덮으려는 노림수란 분석이 다수였다. 야당의 영부인 특검법 발의도 같은 해석이 뒤따랐다. 추석 밥상에 밉상은 자당만이어서는 안된다는 계산이었을 터.
하지만 정치권의 이름 중 유일하게 등장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뿐이다. 구룡포가 피해복구가 더딘데 그 지역 사람들은 대통령이 구룡포를 다녀가지 않아서라고 원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국회 패싱. 양당 모두 밉상이어서 패스하는지, 아니면 너무 의견이 갈려 가족 간 불화가 싫어 패스하는지 모르지만, 양당이 추석을 맞아 준비한 것이 민생과 전혀 관련이 없어 등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윤 대통령이 등장한 단 한 번의 순간조차 수해복구와 연관 지어서니 말이다.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