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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시상 대상은 미국내 방송 제작물이다. 미국 입장에선 국내 방송 잔치를 외국에 개방할 이유가 없고, 한국 드라마가 수상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어로 만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에미상 74년 역사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수상은 최초의 사건이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황동혁 감독은 10년 이상 구상해 온 드라마를 예술적,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정재, 오영수 등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국적과 언어가 다른 전세계 시청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은유한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에 직관적으로 공감했다.

독보적인 걸작으로 손색 없는 '오징어 게임'이지만 작품만으로는 에미상 수상이 불가능했다. 국적(?)이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다. 오징어 게임의 IP(지적 재산권)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 소유다. 덕분에 돈방석에 앉았다. 1조원의 수익에 기업가치가 급등하고 유료가입자가 폭증하는 특수를 누렸다.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한 황 감독과 출연배우들은 하청 대금 250억원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오징어 게임의 수상을 '사건'으로 보도한 한·미 언론의 인식엔 커다란 격차가 있어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이제 자막으로 시청하는 외국어 드라마도 미국 드라마로 인정해야 할 시대인 점에 주목한 듯싶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즈니+', '애플TV+' 등 미국의 거대 OTT 기업들이 전 세계 제작자들에게 하청을 맡기고 있다. 미국 토종 콘텐츠만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은 미국 방송산업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선언에 가깝다. 한국 드라마, 한국 배우에 집중하는 우리 언론 보도와 결이 달라 보인다.

OTT 기업의 강력한 창작 파트너인 K-드라마가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방송 콘텐츠 외주제작사에 대한 발주사들의 갑질과 착취가 만연했던 탓이다. 황 감독은 10년 넘게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해 넷플릭스 하청 제작자가 됐고, 그 탓에 오징어 게임은 '미드'가 됐다. 이대로라면 국내 제작사들은 미국 OTT 기업들이 설계한 오징어 게임에서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대단하지만 여운은 찝찝하다. 상금 없는 상장 같달까.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