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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195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처음 열렸다. 청소년 근로자들의 직업기능을 겨루는 국제대회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한국은 1967년 16회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5·16 쿠데타 주역이나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김종필이 주도했다. 1965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럽을 순방하다 기능올림픽을 보고 국제기능올림픽한국위원회를 창설해 초대 이사장에 올랐다. 이듬해 참관인을 보내고 선수를 선발하는 등 준비를 거쳐 대회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 첫 출전부터 종합 4위에 오르며 범상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이후 4강권을 유지하는 강국으로 자리하더니, 1977년 우승을 시작으로 9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첫 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한 선수단에 정부는 범국민적 환영행사로 화답했다. 카퍼레이드에 대통령 앞 귀국신고, 국립묘지 참배, 지역별 행사 등 선수단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신문은 1면 머리로 보도했고, 방송이 떠들썩한 현장을 전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능올림픽을 산업화의 치적으로 활용했다. 전국 주요 도시에 공고를 집중적으로 설립해 매년 수천 명 기능인을 양성했다. 기능올림픽 국가대표가 되려면 가혹한 경쟁을 이겨내야 했다. 학교·기업별로 지방대회를 거쳐 전국대회 우승자를 선발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낸 선수들은 대회 때마다 금메달을 휩쓸었다. 체제 선전을 노린 정부의 파격 지원에,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열정이 더해져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선수단이 지난 14일 결단식을 했다. 코로나 창궐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는데 11월 28일까지 15개국 26개 도시에서 공동 개최된다. 60개국 선수 1천15명이 참가하는데, 51명이 출전하는 대한민국은 2015년 브라질대회 이후 7년 만에 종합우승을 노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훈련장인 인천 부평구 기술진흥원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대회 전 대통령이 선수단을 격려한 건 33년 만이다. 마침 이날 고용노동부는 선수단에 대한 처우와 훈련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숙련된 장인들이 많은 나라가 기술 선진국이다. 기능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예전 같지 않으나 기능인 양성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