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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는 도박의 중독성과 위험을 상담하고 있다. 센터에 '당신만이 할 수 있지만, 당신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22.9.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처음엔 중독인 줄도 몰랐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늪처럼 서서히 빠져든 것 같아요.
회사원 김정호(가명·29)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불법 스포츠 도박, 일명 '사설 토토'를 접했다. 처음엔 가벼운 취미라고 여겼던 김씨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스포츠 도박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국내 스포츠 경기, 새벽에는 해외 스포츠 경기 등 종일 스포츠 도박에 매달렸다.

김씨는 "도박 사이트에 현금을 입금해 받은 '사이버 머니'로 배팅하는 방식"이라며 "온라인 게임에서 가상의 돈을 사용하는 것처럼 홀리듯 10만원, 20만원, 100만원의 돈을 걸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온라인 게임하듯 '사설 토토' 베팅
치유센터 상담 20·30대 비율 68.1%

2020년 '상승장' 테마주 등 눈돌려
"조절 능력 잃는 질병… 중독 끊어야"

빚은 점점 쌓여만 갔다
김씨는 100만원을 가지고 3주 동안 4천700만원을 번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돈을 다 잃는 데에는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그제야 자신이 도박 중독이란 걸 자각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는 큰돈을 땄을 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어 돈이 생길 때마다 도박 사이트에 접속했다.

김씨는 결국 신용 대출까지 받으며 도박의 늪에 빠져들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빚은 점점 쌓였다. 그는 돌려막기 식으로 신용 대출을 계속 받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월급으로 원리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은 돈을 모으면서 자리 잡고 있을 때 그의 수중엔 1억2천만원의 큰 빚만 남았다.

20·30대 상담 비율 높아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어려운 도박 중독. 인천에서 김씨처럼 도박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 지난해 상담을 요청한 인천 시민은 752명이다. 2년 전인 2019년에는 537명, 2020년은 642명으로 매년 100명 이상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최근까지 600명이 센터를 찾았다.

연령대별로는 30대(239명·39.8%)가 가장 많았고, 20대(170명·28.3%)가 뒤를 이었다. 특히 20·30대 청년(68.1%) 비율이 높았다. → 표 참조
주식·코인도 도박처럼
직장인 장재영(가명·29)씨는 사설 토토로 시작해 주식과 코인에도 손을 댔다. 장씨는 직장을 가지면서 스포츠 도박에 거는 돈이 급격히 늘어났다. 하루 1만원 정도였던 배팅액은 100만원 단위가 됐다.

돈을 잃을 때면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이런저런 스포츠 경기에 판돈을 걸었다. 하루 최대 500만원까지 잃기도 했다.

2020년 무렵 주식·코인 열풍이 불면서 장씨는 주식과 코인 투자도 시작했다. 여유 자금을 가지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씨는 "주식과 코인도 신용 대출받은 돈으로 도박처럼 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칫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테마주 등에 눈을 돌렸다. 결국, 그는 주식에 넣은 2천500만원을 모두 날렸다. 1억4천만원을 사들인 코인도 반 토막 났다.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출근한 뒤에도 스포츠 도박, 주식, 코인에 집중하느라 일은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지인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도박 중독은 '질병'
장씨는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발견한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1336)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그는 "도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이성적 판단을 못 하게 하는 질병"이라며 후회했다. 그러면서 "상담을 받으면서 도박 중독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빚도 조금씩 갚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김정열 센터장은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스포츠 도박뿐 아니라 최근 주식과 코인 열풍까지 불면서 청년들이 한순간에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도박에 점점 빠져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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