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한국프로축구(K리그)의 최강자는 성남FC의 전신 '성남 일화' 구단이었다. 1993~1995년까지 3연속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다혈질 박종환 감독과 적토마 고정운, 꾀돌이 신태용 선수가 대표 얼굴이었다. 한동안 뜸하더니 2001~2003시즌 3연패 신화를 다시 썼다. 2011시즌에도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FC)도 2차례 석권했다. 3회 우승한 포항 스틸러스엔 못 미치나 4강 진출횟수(7차례)는 국내 팀 가운데 가장 많다. 1967년 시작된 AFC에서 2회 이상 우승한 국내 구단은 포항, 성남, 울산(현대), 수원(삼성)뿐이다. 2010년대 이후 전북 현대(리그 9회 우승) 시대가 열리기 전, 성남은 압도적 성적을 자랑하는 명문구단이었다.
일화 전성기를 이끈 숨은 영웅이 있다. 구소련 연방 타지키스탄 출신인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 선수다. 1992~1998시즌 성남에서 골키퍼로 맹활약했다. 모스크바에서 뛰다 소련이 붕괴하자 한국에 왔다. 일화 시절 7시즌 157경기에 출장해 179실점을 기록했다. 2000~2004시즌 안양 LG에서 95경기에 출장, 99실점으로 막았다. 토종인 김병지 선수와 비견되는 짠물 기록이다. 한국에 귀화해 신의손(申宜孫)으로 개명하고 구리 신(申) 씨 시조가 됐다.
명문 성남FC가 흔들리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지난달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리의 대명사가 된) 이런 구단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다. "개선 의지도 없고 꼴찌만 하고, 시민들의 혈세를 먹는 하마"라며 매각 의사를 밝혔다.
충격에 빠진 팬들이 반발하고 있다. 어떤 권리로 시민구단을 몰래 팔 수 있느냐고 한다. 정치권이 스포츠에 개입해 운명을 가르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시민 청원 게시판엔 매각에 반대한다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8일 홈경기에서 포항에 패해 리그 꼴찌에 머물렀다. 원정팀 포틸러스 응원석에 '구단은 정치인들 소유물이 아니다', '까치둥지는 이곳 성남뿐'이라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축구팬이라면 모두가 동병상련일 것이다. 지방선거 때마다 숨을 죽여야 하는 게 지자체 운영구단의 서글픈 현실이다. 스포츠 빌런(Villain)이 따로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