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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오래 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화 혁명이 막 부각될 때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의제가 있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증진시킬 것인가, 저해할 것인가?

그 무렵만 해도 가상공간이 이처럼 거대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는 보통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필자 또한 그런 필부 가운데 하나였다. 인터넷의 확산, 보급은 정보 공유로 직결될 테고 이는 보통 사람들, 서민들, 민중, 중산층의 의식 각성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한국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보급에서 첨단적 수준을 갖춘 나라로 비약했고 모든 면에서 과거의 개발도상국이라든가 제3세계의 일원이라든가 하는 상황과는 절연해 버렸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인터넷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정치인, 선거 움직이는 여론에 촉각
온갖 채널 통해 왜곡·변형되기 일쑤


한국은 국민들의 보통선거를 통해 국가 최고 지도자와 의회에서 일할 사람들을 선출하는 나라다. 선거가 국가 운영의 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각각의 정치적 세력들은 이 때문에 선거에 명운을 건다.

그리고 이 선거를 움직이는 것은 여론이다. 정치세력들은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형식상 이 여론을 대표하는 것은 방송과 신문이고,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매체들이며,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여론조사 기관이라는 것이 우후죽순 생겨 시시각각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조사한다. 그 결과는 각종 통계로 수치화되어 발표된다.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못해 숨이 가쁘다. 하루종일 다른 것 안 하고 이런 것들만 보아도 하루가 다 가고 심심치가 않다. 세상 어느 나라도 우리 한국만큼 리듬이 빠르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속도만큼 증진되는 것 같지 않다. 이것이 최근 필자가 도달한 결론이다. 무엇보다 여론은 인터넷을 통과하면서 굴절되다 못해 왜곡, 변형되기 일쑤다. 온갖 채널의 시사 프로들, 각종 정치 성향의 유튜브들은 무엇이 국민들의 진실한 생각이고 느낌인지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는다. 각종 '여론기관'들은 자신들의 신조에 따라 여론을 움직이고 끌어내며 통계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그늘진 곳에 위치해서 인터넷 여론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은 넓고도 깊게 분포해 있다. 이것이 필자의 실감이다. 시사적인 기사들을 양산하고 댓글을 대량으로 쏟아붓는 '힘'들에 의해 국민들의 견해는 사실에서 아주 멀게 가공, 변질된다.

무리를 무릅쓰고 더 나아가 보자면, 여론조사뿐 아니라 이제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 할 선거조차도 믿음직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선거 집계 과정의 전산화는 많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과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주 이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속도보다는 진실을 원할 테고, 하루 이상이 걸리더라도 투표 집계원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세고 더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넷 주무르는 세력 국민들 호도
'집단지성·대중지성'… 미사여구로
자신들 입맛에 맞게 가공 변질시켜

최근,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화면에 비치는 정치인들의 얼굴, 그들의 말, 그리고 그것들이 취급되는 방식, 그러니까 화면이 그들을 포착하는 방식을 보면서,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는 정상적이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것은 저 문제들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하기는 필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나 자신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생각을 하고 전혀 반대편인 것 같은 견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곤 한다.

과거에는 억센 권력이 민주주의를 억압한다고 믿었다. 지금 국민들을 호도하는 세력은 인터넷을 주무르는 이들이다. 그들이 '집단지성'이니 '대중지성'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여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는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