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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종영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회자하며 여러 분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의하면 우영우의 1회 시청률은 0.95%였으나 마지막 16회는 17.53%로 치솟아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인기 덕분에 출연 배우들은 물론 인지도가 없던 ENA 채널까지 대중적 인지도와 함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과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최근 정부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관한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질병관리청은 국가가 실시하는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자폐 진단 검사항목을 더 추가하여 지금보다 더 빨리 증상을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드라마에 함께 열광하면서 장애 문제에 공감하게 되자 장애인 인권 의식이 높아지고 사회제도까지 개선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드라마 '우영우'·슈퍼볼 '하인스 워드'
열광하는 놀이 통해 사회제도 개선


많은 사람이 함께 열광하는 놀이를 통해 사회제도가 개선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영우와 비슷한 경우를 들자면 한국계 미국인이자 미식축구 선수였던 하인스 워드(Hines E. Ward, Jr)를 들 수 있다. 2006년 2월 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 경기에서 워드는 자기 팀을 승리로 이끌며 아시아계 선수로는 처음으로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미식축구경기는 한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서 국내에서 시청하기 어렵지만, 단일 경기 이벤트로서 세계 최대 규모인 슈퍼볼 경기만큼은 국내에서 중계되어 우리도 슈퍼볼 경기를 보면서 워드에게 열광하고 그의 삶의 굴곡도 알게 되었다. 워드는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주한 미군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부모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도 많이 받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포츠 스타가 되었다. 워드는 MVP 수상 직후에 한국을 방문하여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만났다. 워드로 인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위 '혼혈'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게 되었다. 이런 대중적 관심 속에서 2007년에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 2008년에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다. 1990년대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오고 2000년대 초부터 국제결혼 이주자가 증가하여 이들에 관한 사회제도 필요성을 전문가들이 주장했지만 실제로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워드로 인한 대중의 관심과 외국인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공감 수준이 높아진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사를 전공한 린 헌트는 18세기에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아이디어가 '발명'되는 과정에 서한소설(허구의 서신 교환 방식 소설) 읽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확대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서한소설 독자들은 신분 차이로 인한 비극적 사랑이나 잔인한 고문 형벌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상상을 하고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하며 평등과 인권 의식을 키웠다는 것이다. 18세기에 서한소설 읽기라는 놀이가 인권을 발명했다면, 21세기에 드라마나 스포츠경기 시청의 놀이가 인권 의식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놀면서 득실 떠나 즐거운 상태에서
타인 관심 갖고 고통공감 많아질때
인권의식 높아지는 사회변화 생겨


놀이에 대해 학문적으로 처음 연구했던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란 자발적인 몰입행위로서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 다른 긴장과 즐거움을 수반한다고 보았고, 놀이에 '비생산성'과 '황홀감'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혼자서 드라마나 스포츠를 보면서 노는 것은 비생산적이지만, 놀면서 자신의 이해관계 득실을 떠나 순일하게 즐거운 상태에서 타인에게 관심 가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인권 의식이 높아지는 사회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비생산적이라서 쓸모없다는 놀이가 쓸모 있게 되는 순간이다.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