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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휴대전화 진동음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웠다. 새벽의 전화가 일상적인 용무일 리는 없다. 엄마였다. "왜? 무슨 일이야?" "거긴 비 많이 안 와? 여기 비가 와서 난리도 아냐." 나는 발칵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비 온다고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놀랐어?" 엄마가 하하하, 크게 웃는다. 이봐요, 엄마. 웃을 일이 아니라고. 이 새벽에 비 온다고 전화를 하다니. 나이 든 부모를 둔 딸 마음을 좀 헤아려 달라고. 행여 나쁜 소식일까봐 그 짧은 시간 동안 오그라붙은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심통이 머리끝까지 오르고 말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 소식은 심각했다. 엄마가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현관문을 살살 열고 사진을 찍었는데 마당은 이미 잠겨 있었다. 그나마 단을 높인 현관이라 현관문 바로 앞까지 물이 찰랑댔다. 비는 그쳤지만 마당에는 주전자와 빗자루와 작은 화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내 말에 엄마가 불퉁거렸다. "넌 뉴스도 안 봐? 포항에 비 많이 와서 다 이 모양 됐어." 부랴부랴 뉴스를 켜보니 온통 포항 비 소식이었다.

비소식 전한 엄마 연락 심통났지만
수해 심각한 고향집 사진보며 놀라
아버지가 아끼던 차도 절반쯤 잠겨


내가 태어나 19년을 자란 포항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고요한 곳이었다. 게다가 나는 사택단지에서 자랐다. 사택단지에서 자란다는 건 포항 토박이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고,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어도 포항 사투리를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충청도에서 경기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사택단지에 모여 살며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가장을 두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형산강 다리를 건너 포스코로 출퇴근하던 아버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오토바이를 샀고 아침이며 저녁, 형산강 다리는 거대한 오토바이 물결로 뒤덮였다. 오토바이들은 훗날, 그 아버지들이 포니2나 엑셀 등 작은 승용차를 사며 서서히 사라졌지만.

"멀쩡해" 기뻐하는 목소리에 안도
태풍 아픔겪은 '포항의 안녕' 기도


대학에 진학하며 나는 포항을 떠나왔다. 가끔 사람들과 고향 이야기를 하며 나는 평화롭고 조용했던 그곳의 기억을 되짚곤 했다. 정년 퇴직을 한 아버지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간 조용한 그 소도시에서 엄마와 새벽 시장엘 나가 이것저것 사들인 후 나에게 보내줄 반찬을 만든다. 돌이켜보니 몇 년 전에도 이런 새벽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진이었다. "집이 너무 많이 흔들려서, 놀라가지고 막 골목으로 뛰쳐나갔지 뭐야!" 집이 흔들렸다고? 나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가 여덟 살 때 이사를 했던 그 집, 그 집은 몇 번의 지진으로 결국 담이 무너졌다. 시청에서 피해조사를 나와 복구지원금이 지급되었다며 엄마는 손녀에게 통 큰 용돈을 내밀었다. "공돈 생겼잖아. 기분 좋은데, 뭘." 나는 종종 그 담을 생각했다. 얼마나 흔들렸으면 담이 무너졌을까. 어렸을 적 돌멩이를 던지고 말타기 놀이를 하며 그토록 부닥쳐도 단단했던 담인데. 얼마 후 포항에 다니러 가니, 담은 아예 사라지고 나무 울타리가 서 있었다. "잘 고쳤네. 이게 훨씬 보기 좋아. 예쁘고." 하지만 그 나무 울타리는 이번 비에 잠겼다. 어쩌면 썩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울타리가 썩지는 않는 걸까? 나는 알 수가 없어 조금 마음이 상했다. 사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차 때문에 마음을 앓았다. 공고 자동차과 출신인 아버지는 유독 차를 아끼는 사람이다. 포스코 3교대 근무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운전학원 강사까지 한 데다 지금도 서울, 포항 장거리 운전은 우습다. 그런데 아버지의 차가 절반쯤 비에 잠겼다. 빗물이 빠진 후 엄마와 아버지는 바가지를 들고 차 안에 고인 물을 퍼냈다. 40년을 넘게 함께 산 골목 다른 집들도 다를 바 없어서 한 골목 열여섯 집 중 네 집이나 결국 폐차를 했다. 아버지는 내년이면 이제 여든이다. 이제 주변에서 운전 그만하시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차가 영영 망가지면 어쩌면 새 차를 사는 일이 요원해질지도 몰라 아버지는 애가 말랐다. "운이 좋았어, 운이. 그래도 차는 멀쩡해." 며칠 후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왔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나도 덩달아 안도했다. 내 고향 포항은 이번 태풍으로 아픔을 많이 겪었다. 그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도한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