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제정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십만 명의 도시 노동자들이 황제의 겨울궁전을 향해 행진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기근에 시달렸다. 참다못해 니콜라이 2세에게 급료인상을 청원하려 시작한 행진이었다. 군중은 국가를 부르고 행렬 앞에 황제의 초상을 높이 들었다. 러시아 민중에게 황제는 신의 대리인이었다. 노동자들은 황제가 자신들의 가여운 사정을 들어주리라 기대했다.
휴양 중이던 황제는 궁전에 없었고 노동자들에겐 총탄이 쏟아졌다. 치안 책임자인 황제의 숙부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청원 행진을 폭동으로 몰아 발포를 명령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군중은 "이제 차르(황제)도 하느님도 없다"고 절규했다. 러시아 제정은 이날부터 무너졌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씨앗이 됐다. 황제 일가는 혁명 다음해 즉결 처형된 후 소각됐다.
최근 러시아가 심상치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군사동원령을 발령해 국민 30만명을 강제 징집하자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판의 연속이었다. 며칠, 몇주면 간단히 끝날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7개월을 넘겼다.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전에 러시아의 전력 손실이 막대하다.
급기야 병력 보충을 위해 예비역 동원령을 발동하자 참았던 민심이 폭발했다. 반전시위대는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고 절규하고, 징집을 피하려는 청장년들은 국경을 탈출하고, 반정부 감정이 반영된 총기난사사건도 잇따라 발생했다.
푸틴은 소련 해체 이후의 혼란기에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한 행운아다. 행운에 만족하지 않았다. 헌법을 개정해 독재 권력을 다졌고 사실상 종신 집권자가 됐다. 사실상 제정시절 황제의 권력에 오른 것이다. 그는 구 소련과 제정 러시아 수준의 러시아 부흥으로 민심을 장악했다. '위대한 러시아'의 환상에 빠진 국민은 푸틴에 열광했다. 우크라이나 침공도 영토수복 전쟁이라며 지지했다.
하지만 푸틴이 전선의 총알받이가 될 것을 명령하자 민심이 급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죽고 사는 현실이 되자 푸틴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다. 혁명의 나라 러시아에서 감지되는 수상한 민심. 우크라이나가 푸틴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