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살림이 나아질 기미는 희박하지만 견디며 살만하다. 가끔 책을 덮은 뒤 강가에 나가 모래와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온다. 자주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다. 날씨의 독재 아래서 구두는 낡고 양말엔 구멍이 난다. 낡는 게 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내 안에는 감정과 욕망이 소용돌이친다. 삶을 생산하는 동력이면서 동시에 극단으로 흐를 때 해악이 되는 이것은 나를 빚는 중요성분 중 일부다. 나는 이것들에 휘둘리며 고투하는 존재이다.
다들 행복을 꿈꾸지만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아이들 자라고, 강물 흐르고, 계절 순환되고
나날이 되풀이 같지만 하루도 똑같지는 않아
문득 전혜린을 떠올린다. 난방용 연료로 연탄을 태울 때 생긴 일산화탄소가 농밀하게 떠도는 서울의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독일 뮌헨의 가스등과 안개를 그리워하던 독문학도 전혜린은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고 썼다. 먼 곳을 그리워함! 인간이 저 너머를 꿈꾸는 것은 발 딛고 사는 지금의 현실이 낙원이 아니라 고통과 불행을 낳는 자리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시작한다. 1960년대의 젊은 지식인 전혜린은 제 조국의 가난한 현실과 척박한 지적 토양에 진절머리를 치며 저 서구의 나라를 꿈꾸었을 테다.
먼 곳을 그리워함은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본성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이다. 모르는 곳에서 삶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이 가없는 꿈일지라도 그 달콤함에서 깨고 싶지는 않았을 테다. 이 마음의 바탕은 살아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동경, 먼 곳을 향한 노스탤지어,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이 마음을 철부지의 호사 취미이자 향서취향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독문학 책들을 번역하다가 돌연 이승의 삶과 작별한다. 그것은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어서 사회에 꽤 큰 파장을 남겼다.
생활에 너무 근접해서 사는 자에게 삶의 비루는 더 잘 보인다. 삶의 근경에 붙박여 살 때 우리 뇌는 더 비관으로 기운다. 별들을 바라보며 걷는 자는 필경 진창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지만 우리는 마음의 근심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먼 것을 꿈꾸고 바라본다. 먼 곳을 동경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사람보다 더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이상주의자란 짐승들이 으르렁대는 동물원에서 천국 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다.
로버트 브라우닝은 '사람은 반드시 잡을 수 없는 것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현실 저 너머의 환상을 빚는 뇌는 불가능한 것을 꿈꾼다. 우리는 이 궁극의 것을 쥐고 저 먼 곳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게으른 사람도 근면한 사람도 다들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대개는 행복이 무엇인지 딱히 모르고 산다. 나날의 삶이 기적이라는 대긍정에서 빚어지는 낙관적인 감정이 행복이 아닐까? 먹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나날들 속에서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나고, 강물은 바다를 향해 흐르고, 계절은 영원히 순환한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어제보다 나은 사람' 살겠다고 고백하고파
볕 좋은 가을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다. 근처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구구거리며 모이를 찾는다. 녹색 짐승 같던 활엽수는 가을로 들어서며 단풍이 든다. 나날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어느 하루도 똑같지는 않다. 우리는 날마다 다른 하루를 맞고, 날씨의 변화무쌍함과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이며 산다. 삶은 기적이다! 이 기적에 기대어 우리는 덧없음과 허무를 넘어서고,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는다. 가을엔 누구에게라도 지난해보다, 아니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고백하고 싶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