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단인 러시아 정교회는 10C 말 그리스 정교회 선교에 따라 역사가 시작됐다. 16C 후반 세계 총대주교가 독립교회 지위를 공식인정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단으로, 신자 수가 1억명 정도로 추정된다. 모스크바에 총대주교좌를 뒀다.
러시아 정교회는 20C 초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탄생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무신론에 기초한 공산국가는 신을 섬기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죽이거나 옥에 가뒀고, 예배를 금지했다.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성당들이 파괴되거나 망가졌다. 소련의 박해를 피해 수많은 신부와 신자가 해외로 망명하면서 정교회가 분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구(舊) 소련이 해체되면서 정교회가 부활했다. 러시아 정부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교회를 지원했고, 해외 본부와 국내 본부가 재결합하면서 영향력이 확대됐다. 키릴 총대주교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푸틴 대통령도 정교회의 세 확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키릴 대주교는 특히 독재자 푸틴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 세계 기독교단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키릴이 국민들에게 참전을 종용하고 있다고 외신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키릴은 지난 주 강론에서 "만약 누군가 소명에 충실하고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다면 그는 희생에 버금가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저지른 모든 죄를 씻어준다고 생각한다"며 전쟁 희생자를 예수에 비교했다고 한다.
키릴은 지난 4월 부활절날엔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향해 "러시아 국민에 대해 고상하고 책임감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200명 넘는 어린이가 희생된 우크라이나의 비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휴전을 하자고 제안한데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럽 가톨릭과 정교회 수장들은 푸틴에게 전쟁을 그만둘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키릴 총대주교만 딴소리다. 그에게 실망한 러시아 정교회 교단들의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 푸틴을 옹호하더니 국민 참전을 촉구하면서 예수마저 욕되게 하고 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는 대주교의 잇따른 망언에 교단이 흔들리고 있다. 소련 해체와 독재자의 후원으로 부활한 러시아 정교회가 수장(首將)의 망상으로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