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복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제물포 르네상스는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의 플래그십 공약이다. 근대 개항장 제물포의 명성을 소환해 쇠락한 내항 일대를 해양문화관광 하버시티로 부흥하고 이를 원도심 재생의 앵커로 삼아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들이 있다. 인천의 구석구석을 잘 아는 재임 시장답게 바다 숙원사업을 원도심으로 확장해 인천의 꿈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함께 십여 년간 표류 중인 내항 1·8부두 재개발 사업의 간판만 바꾼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아직 마스터플랜이 나오진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제물포 르네상스의 현장들을 돌아보고 그 의미와 숙제들을 공유하는 것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물포 르네상스에는 시민들이 눈여겨볼 만한 몇 가지 의미들이 있다. 우선 바다를 도시 급소의 인사이트로 삼았다는 것이 본질이다. 서울에 한강 르네상스 얘기가 있긴 하지만 수도권에서 바다를 원도심 쪽으로 보려는 시도는 인천뿐이다. 인천의 본질은 해시(海市)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게 하는 성질이 본질이다. 따라서 제물포 르네상스는 인천의 본질에 부합하고 갑문식 내항과 개항장이라고 하는 인천의 역사적 고유성에 충실한 프로젝트다.

기존 내항 재개발 논란들과는 다른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아인슈타인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처럼 바보는 없다고 했다. 내항 소유권자를 해양수산부에서 인천시로 바꾸고 경제자유구역 지정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와 인천이 내항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수도권 국가산업항 기능에 비중을 두는 반면 인천은 항만에 대한 자치권 부재와 바다 없는 항구도시라는 오명을 동시에 씻어 낼 계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물포 르네상스는 인천의 큰 고비를 해결할 유효한 성장 동력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도 고비가 있듯 도시에도 고비가 있다. 사람은 하던 일이 싫어질 때를 고비라고 하지만 도시는 인구가 줄어들고 지역 격차가 심화하거나 성장의 고삐가 안 보일 때 고비가 온다. 인천은 원도심과 신도시 간 격차가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원도심과 신도시는 새끼줄이다. 어디든 약해지면 끊어져서 도시 경쟁력의 합이 반감된다. 인천 원도심은 인천역·동인천역 주변 등 중구와 동구뿐만 아니라 미추홀구, 남동구, 서구, 부평구에 산재해 있다. 제물포 르네상스가 원도심 재생의 토털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인천 역사적 고유성에 충실한 프로젝트
'항만 자치권 부재' 오명 씻어낼 수 있어
원도심-신도시 격차 갈등 '고비' 넘어
경제자유구역은 20년전 낡은 제도 '한계'


그러나 제물포 르네상스는 어려운 선행 과제들을 동반하고 있다. 첫째, 현 정부의 법·제도나 지원 체계로는 온전한 제물포 르네상스의 추진이 험난해 보인다. 내항 소유권 이전도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얻어 내더라도 이미 경제자유구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이나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규제 아래 무력화된 20년 전의 낡은 제도다. 지금 인천이 꿈꾸는 제물포 르네상스를 전략적 맞춤형으로 지원하기에는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다. 수도권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 경쟁력 저하의 돌파구를 인천이 제시한 제물포 르네상스와 뉴홍콩시티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을지 정부가 정책 전환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둘째, 수도권매립지의 문을 닫아야 한다. 남의 쓰레기를 자기 앞마당에서 처리하는 도시가 제물포 르네상스·초일류도시를 운운하면 허황된 말로 들린다. 시민들은 쓰레기장을 지켜보는 그 눈으로 제물포 르네상스를 볼 것이다. 제물포 르네상스는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민선 8기 시장 임기 중에 마스터 로드맵만 완성해도 대단한 진전이라고 본다. 더구나 뉴홍콩시티를 구상한 세계 초일류 도시 공약은 그야말로 장기 계획이다. 따라서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원대한 프로젝트 그 자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일 가능성이 크다. 산악인이 험준한 산에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골목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도권매립지는 인천디스카운트의 주범이다. 인천에도 이롭고 서울·경기에도 이로운 척 자리이타(自利利他) 방식으로 서울·경기의 대체매립지 조성과 인천 쓰레기장 사용 연장을 병행하려는 시도들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주변 도시 트랩에 갇힌 시민들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제물포 르네상스는 탄력을 받는다. 징비록을 읽다 보면 화가 나듯이 KBS 경인뉴스를 보다 보면 화가 난다. 메인은 서울이고 인천은 사건·사고 뉴스로 편파되어 있다. 이는 SNS에서 떠도는 마계인천이니 정주의식이 떨어지느니 하는 루머들의 진원지 구실을 한다. 서울 일극주의의 최대 피해 도시는 인천이다. 주민생활 만족도 조사의 저평가 현상도 서울 일극을 선망하는 상대적 결과다. 화력발전소, 수도권매립지, 가스저장기지 등 수도권용 기피시설이 집결한 인천은 서울 변방의 회색도시라는 주변 도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정책들을 강화해야 한다. 역사의 변화는 늘 주변에서 일어났다. 기득권을 지키며 관리하는 서울과 주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인천의 길은 다르다. 개항장 같은 자신의 고유함은 방치되고 경인고속도로 일반화와 부평 미군기지 같은 주어진 떡도 제대로 소화를 못 하는 행정력으로 시민들을 답답하게 해선 안 된다. 어느 예술인이 그의 작품에서 읊조린 '인천은 뭐 딱히 없는데 뭔가 딱히 있는 동네'가 무슨 말인지 새겨들어야 한다.

넷째, 인천항만공사는 급소다. 급소는 중요하면서도 늘 걱정스러운 곳이다. 인천이 어려움을 겪는 곳에는 어디나 급소들이 있다. 인천 안에 있으면서 인천 밖의 인천 같아서 껍데기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항만공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한국산업단지공단 등이 그것이다. 껍데기처럼 자치권이 없기는 해양수산청, 중소벤처기업청, 노동청도 마찬가지다. 급소들은 공통적으로 인천으로 하여금 일머리 순위를 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모든 급소를 당장 인천화하기는 어렵지만 항만공사의 지방화는 시급하다.

다섯째, 고층·고밀 개발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볼 때 내항 바닷물이 잘 보여야 한다. 내항을 보전지구로 지정해서 필요한 개발만 풀어주는 저층·저밀 개발 담보장치를 두려는 생각과 인천시가 내항 소유권을 갖고 일관성과 속도감 있게 공공성과 수익성을 도모하려는 생각들이 조화되어야 한다. 티격태격하면서 시간을 끌 중요한 사안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제물포 르네상스가 명품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봐야 한다. 우선 베끼면 안 된다. 내항 재개발이라는 개업이 아니라 제물포 르네상스라는 창업을 해야 한다. 주변 도시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슨 일을 할 때 선진 도시들의 선례를 뒤져보는 버릇이다. 보고 배우는 것은 좋지만 종종 벤치마킹이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운 것들은 내가 나를 표현할 참고 수단 정도로만 쓰고 철저히 나를 자화(自化), 자율(自律), 자쾌(自快) 해야 한다. 밖에서 배운 춤이 아니라 인천 춤을 추어야 한다. 어디서 본 듯하면 아류다. 인천 너는 누구냐? 니가 너냐? 인천은 인천이기만 할 때 위대하다.

'디스카운트 주범' 수도권매립지는 문닫고
주변도시 트랩 갇힌 시민 자존감 회복해야
다양한 의견들이 모이는 상설 플랫폼 필요
백제 개항 1650년 '인천몽' 견인차 되기를


공감 없는 공약은 공약(空約)이다. 공약은 속도지만 공감은 방향이다. 제물포 르네상스 조감도를 그리기 전에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들이 모이는 상설 플랫폼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제물포 플랫폼'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겠다. 이 플랫폼이 르네상스의 품질을 좌우한다. 혹여 조급함에 쫓겨 전문가들로 우선 프레임을 짜고 나중에 시민사회 의견을 듣는 편이 효율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쁜 방법이다. 당초 공약은 시민들이 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것이지만 공감은 시민들의 기대와 본질이 일치할 때 일어나는 퍼텐셜 같은 것이다. 시민 스스로 끌어내는 잠재력을 제물포 르네상스 엔진으로 장착해야 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스스로'다.

명작은 디테일에 있다. 세계적 명품 사례를 만들려면 업무일지 말고 디테일한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스토리를 남겨야 한다. 입고출신이란 모든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는 뜻이다. 개항의 역사로 들어가서 르네상스의 미래로 나와야 한다. 문사철(文史哲) 인문학자들의 자문단 참여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다. 어디다 만들어 놓아도 횟집들로만 가득 찬 종합어시장이 단명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 멈춰서 있는 상상플랫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초일류 도시는 사람을 보고 하는 얘기다. 세계 선진 도시를 말할 때 시민의식 평가는 중요하다. 인천에 사는 것이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천에 사는 것이 뿌듯하다는 시민이 많아야 일류 도시다. 일류 도시의 시민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도시의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주인 없는 도시, 고유함을 잃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도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는 도시, 시도지사 업무 평가가 습관적으로 만년 하위인 도시라는 비아냥을 등에 진 채로 인천이 초일류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이러한 솔직한 각성을 스스로 할 줄 아는 시민이 많아지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리더는 인천이 독보적이다.

올해가 백제 개항 1650년, 내년이 근대 개항 140년이다. 인천시민의 날(10월15일)을 축하하며 부디 제물포 르네상스가 인천몽(仁川夢), 인천풍(仁川風), 인천력(仁川力)의 견인차가 되기를 바란다.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