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우리는 '풍류(風流)'의 민족이다. 한국인들의 유전자에는 흥과 신명이 있다. 한반도의 옛 역사를 기록한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은 한민족(韓民族)이 '축제와 놀이'를 즐긴다고 묘사한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그리고 부여의 영고(迎鼓)와 같은 제천의례(祭天儀禮)를 통해 모두가 참여하여 축제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음주가무(飮酒歌舞)와 놀이가 뒤따랐을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 우리는 모두 '끼'를 갖고 있다. 끼가 억압되면 '한(恨)'이 되지만 발산되어 표현되면 축제와 놀이가 된다. 오늘날에는 그것을 대중문화 콘텐츠라고 부른다.
드라마·음악·게임 전세계인이 즐겨
대한민국 '역사' 소재로 작품 형상화
경제발전·예술교육 고급 인력 배출
한반도의 역사는 다양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우리는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내전을 겪었다. 단기간에 압축 성장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도달했다. 민주주의도 실현되었다. 20세기 대한민국은 민족분단, 이념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의 장점과 문제점을 모두 경험했다. 현재는 지역, 세대, 젠더갈등도 부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난과 영광의 역사는 K-콘텐츠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화예술인들은 그 경험을 활용하여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경제는 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경제발전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등장했다. 또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 인력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영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1984년에 설립됐고 1993년에는 예술교육에 중점을 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교했다. 고급 문화예술 인력을 배출했다. 이들은 현재 문화예술계의 중진이 되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산업화뿐만 아니라 민주화도 중요하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에 영화의 '사전심의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의 검열제도 폐지였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민간정부는 할 수 있다. 외부 압력이 없어지니 작품의 소재와 주제, 표현 방식이 자유로워졌다.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었다.
인터넷은 K-콘텐츠 강국의 숨은 원동력이다. 인터넷 이용 인구의 확대와 모바일 등 정보통신기기의 보급으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대중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제작은 물론 유통과 소비 방식도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이 없었다면 국내 콘텐츠의 확산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K-콘텐츠의 성공은 제작 분야로만 한정돼있다. 소비도 중요하다. 플랫폼을 확보해야만 시청자 취향, 지역, 이용시간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새로운 장르, 포맷 개발이 용이해진다. 플랫폼이 중요한 이유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된다면 K-콘텐츠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외부 압력 없어져 표현 '자유' 확대
'윤석열차' 논란은 여전히 남은 과제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른바 '윤석열차' 만화공모전을 둘러싼 논란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 사안에 대해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갈등은 모든 콘텐츠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정부가 생각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자유의 가치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대통령은 풍자의 소재가 되면 안되는가? 의문이 든다. 문화예술 분야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이 최선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