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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경기침체에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미증유의 딜레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묘방은 무엇인가.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면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나 모순되게도 갈수록 깊어지는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공격적 재정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와 고물가란 모순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성장을 기치로 내건 영국 보수당 출신 신임 트러스 엘리자베스 총리는 감세정책과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하다 파운드화의 급락을 초래했다. 트러스는 심상치 않은 시장 상황과 여론에 못 이겨 고소득자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결정을 철회했지만 그 여파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11일 기준 파운드화는 1파운드당 1.1달러로 떨어져 있다. 영국의 경제 위기는 오래됐다. 대처 총리는 당시 영국의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보다는 금융 중심의 정책을 폈고 이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다. 국익을 전면에 내세운 보리스 전 총리의 강력한 브렉시트 추진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영국의 위상을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미국과 같은 영어권 국가에 제국주의 시대의 패자로서 유럽 금융의 중심으로 군림하던 영국은 세계 각국 금융회사의 이탈을 지켜보고 있다. 파운드화는 세계 4번째 기축통화다. 스털링 블록(sterling block)이라고 해서 영연방에 속해있던 상당수의 국가들이 파운드화를 무역 거래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한동안 파운드화의 위세가 대단했다. 파운드화는 파운드란 말 그대로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단위가 화폐 이름으로 전용된 것인데, 그 만큼 세계에서 차지하는 파운드화의 무게가 대단했던 것이다.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영국의 파운드화도 세계적 경제난에 갈팡질팡하는 정치 리더십으로 인해 국제적 위상과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같은 파운드화의 몰락과 위기는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다. 정파적 이익과 지지 세력을 대변하는 정책이 얼마나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금융기관 수장들의 노선과 철학은 무엇인가. 새 정부의 국정비전과 철학은 여전히 안갯속이나 인플레이션을 막아보겠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딱히 내세울 만한 노선과 철학이 없다면, 국가만을 생각하는 예측 가능한 정책과 흔들리지 않는 소신이 가장 중요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