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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에서 친족 사이의 범죄를 방치하거나 가볍게 처벌하는 문화는 흔하다. 그 탓에 이슬람 여성들은 야만적 수난을 겪는다. 지난해 파키스탄의 패션 모델 나야브 나딤은 "모델 일을 해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의붓오빠에게 살해당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을 가족이 살해하는 명예살인이다. 논란의 여지 없이 더러운 범죄이다. 한 해 5천명 이상의 여성이 희생된다. 명예살인을 합법화한 이슬람 국가는 없다. 법이 정한 처벌도 무겁다. 하지만 실제 처벌이 약해 명예살인자를 영웅시하는 문화는 근절되지 않는다.

최근 이란 여성들의 전례 없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맥락상 명예살인 악습이 계기가 됐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게 잡혀간 소녀의 의문사에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들고일어났다. 히잡을 안 쓰면 가족이나 국가에 의해 살해당할 수 있는 삶을 인내할 여성, 아니 인간은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이란이 최후의 선을 넘었다.

현대 인권국가에서도 친족간 범죄를 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특례를 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의 규범이 관습법으로 굳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가 대표적이다. 가족 내에서 발생한 절도·사기죄 등 재산범죄에 대해 죄를 묻지 않거나 친고죄로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재산죄는 묻지 않고, 민법상 친족인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은 친고죄로 처벌한다.

최근 예능인 박수홍씨 가족의 재산분쟁으로 친족상도례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와 형 부부는 박씨의 수입에 전적으로 생계를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형 부부가 횡령한 박씨 재산이 검찰 공소장 기록에만 61억원이다. 박씨 아버지가 자신의 범죄라고 주장하면서 친족상도례가 된서리를 맞았다. 박씨에게 형이 한 짓이나, 아버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가족'이 무색하다. 직접 살인 말고도 사람을 죽이는 방식은 많다.

배금문화가 만연하면서 돈 앞에서 남보다 못한 가족들이 흔하다. 친족상도례도 가족이 서로 가족으로 인정해야 가능하다. 친족상도례 폐지가 부담이라면 최소한 친고죄로 단일화해,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족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