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기행 죽산 조봉암 선생 장녀 조호정 인터뷰3
2016년 3월 서울 자택에서 경인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고(故) 조호정 여사. /경인일보DB
죽산 조봉암 선생의 장녀이자 정치 동지였던 조호정 여사가 26일 오전 1시21분께 별세했다. 향년 94세.

조호정 여사는 1928년 조봉암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죽산이 일제 경찰에 체포돼 신의주 감옥으로 압송된 이듬해인 1933년 5월 어머니 김이옥과 함께 인천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귀국하자마자 딸과 함께 인천경찰서로 연행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다섯 살이던 고인은 인천경찰서에서의 상황을 평생 기억했다.

1934년 10월 어머니를 여의고 먼 친척을 따라 인천 부도정(현 중구 신흥동)에서 성장했다. 조 여사는 호적이 없어 정규학교에 가지 못하다 1937년 조봉암 선생이 감옥에서 나온 이후 박문여학교를 들어갔고, 1950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1955년 시인이자 영화감독이던 이봉래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뒀다. 


26일 오전 1시21분 별세 향년 94세
1959년 사법살인 父 복권에 온힘


조 여사는 2016년 3월 경인일보와 가진 인터뷰(2016년 3월24일자 9면 보도=[인천 고택기행·12] 도원동 부영주택)에서 1940년대 인천 도원동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집(부영주택)이 역사성을 지닌 장소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조호정 여사는 해방 후 정치가의 길을 걸은 조봉암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 국회 부의장일 때 비서로 활동한 정치 동지였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죽산이 결국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1959년 사법살인을 당한 이후 평생을 아버지의 복권을 위해 애썼다. 조봉암 선생의 사형 선고 당시 조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이기붕 부통령 등에게 탄원서까지 썼으나, 끝내 전달되지 못했다.

2011년 대법원이 진보당 사건 재심에서 죽산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복권됐다.

하지만 조 여사는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로 완전한 명예회복을 이루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조봉암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는 "조호정 여사는 죽산의 공식 비서를 지낼 정도로 영민한 분이셨고, 상하이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을 고향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유족은 딸 이성란씨와 사위 유수현씨가 있다. 호상은 이모세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장이 맡았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이며 발인은 28일 오전 8시40분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