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사회교육부기자.jpg
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나른한 금요일 오후 그곳, SPC 계열 제빵공장을 처음 찾았다. 대형마트 몇 개를 붙여놓은 듯한 거대한 규모로 주변 중·소규모 공장을 압도하는 그곳. 어느 쪽이든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식사와 휴식 모두 내부에서 해결한다는 그곳에는 주변을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화물차량만 출입구를 드나들 뿐이었다. 고요함과 숨 막힘 사이, 수백 대는 족히 모여 있는 주차장과 그마저도 부족해 주변 도로를 빼곡히 채운 차들만이 이 안의 사람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난공불락'. 허탈한 귀갓길에서 느낀 그곳의 첫 인상이다.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 그곳으로부터 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토록 고요했던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었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전날 못 만난 노동자를 현장에서 만났다. 어제와 달리 어수선한 공장 주변, 그보다 놀라운 것은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 전도 내부는 항상 같았다는 노동자의 증언이었다. 언제 시끄러워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곳의 사정은 그때부터 온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됐다. 분향소가 차려지면서 굳게 닫혔던 문도 비로소 열리게 됐다.

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을 다니던 청년 노동자의 희생은 예고된 '인재'였다. 일련의 사건은 고요한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20대 여성으로서 홀로 감당하기 힘든 밤샘 격무에 시달렸지만 도와줄 동료도, 구해줄 안전장치도 없었다. 고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음날도 사고현장은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일부는 대구까지 파견돼 기계를 가동했다. 씩씩한 성격으로 책임감이 투철했다는 고인의 사연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대통령의 입을 두 번 열게 했다. 숱한 논란에도 '난공불락' 같던 SPC그룹도 결국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날도 어느덧 2주가 넘어간다. 31일이면 사고 현장의 작업자들도 다시 일선으로 나선다. 아직 변한 것은 없다. 지금도 똑같은 주·야간 12시간 맞교대 체제로, 똑같은 작업대 앞에서 똑같은 빵들이 생산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바깥은 더 이상 고요하지만은 않다. '골든타임'은 이제 시작이다. 한때 뜨거웠던 기억으로만 남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곳을 찾을 것이다.

/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