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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 순례는 이슬람교도에게 필생의 염원이다. 해마다 메카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백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가 된다. 이 때문에 성지 순례가 대형 압사 참사로 악몽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1990년엔 메카로 향하는 터널에 인파가 몰리면서 1천426명이 압사했다. 1994년에 270명, 2005년에도 345명이 인파에 깔려 죽었다. 2015년엔 돌기둥에 마귀를 물리치려 돌팔매질에 나선 순례자들 700여명이 압사했다. 메카는 20, 21세기 최악의 압사 발생 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 서울역 압사 사건이 최악이었다. 설날을 이틀 앞둔 1월 26일 서둘러 열차 승강장으로 돌진하던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31명이 숨졌다. 1965년엔 광주 전국체전에서 경기장 입장객 14명이 압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뉴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 때 여고생 1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해 국내 방송사 공개방송 때도 압사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 기억은 가물가물해 대형 압사사건은 해외토픽으로나 접하는 후진국형 참사로 여겼던 참이다.

전국민이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에 말을 잊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인파가 내리막 골목에서 무너지는 바람에 150여명이 숨졌다. 온라인에 올라온 현장 영상들은 아비규환으로 가득했다. 이태원은 남산 산자락에 위치해 가파른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리면 골목에 갇혀 꼼짝할 수 없다. 한 두명이 중심을 잃어 둑이 터지면 인간 쓰나미가 발생하는 지형적 구조다.

언제부터인가 이태원이 국내 핼러윈 축제의 성지가 됐다. 인파 사고를 우려하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코로나19로 지난해 썰렁했던 이태원에 거리두기 해제 후 첫 핼러윈을 맞아 보복인파가 모여들자 사고가 터졌다. 인파에 막힌 소방과 경찰의 현장 진입이 늦어지면서 현장의 시민들이 심정지 환자들을 직접 심폐소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희생의 규모가 너무 커 최악의 핼러윈 참사로 국제적인 사건이 됐다.

코로나 예방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듯, 사람 사이에도 안전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를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인파도 재난임이 드러났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