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 20대 희생자들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낙인은 23년 전 학생들이 호프집에서 참변을 당했던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때의 사회적 시선과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 인현동 참사 당시에도 학생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1일 오후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10시15분께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천 시민 7명(외국인 포함·오후 6시 현재)을 포함해 15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사고는 핼러윈을 앞둔 주말 밤 비좁은 골목에 몰려있던 인파 속에서 일부가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축제를 즐기러 왔던 20대로 확인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그곳에 간 게 잘못"이라는 비난과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간것이 잘못" 비난·조롱들
신경정신의학회 "낙인 안돼" 성명
신경정신의학회 "낙인 안돼" 성명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30일 이태원 참사로 숨진 시민에 대한 혐오표현을 멈춰달라는 성명을 통해 "온라인상에 나타나는 혐오표현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분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가중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천에서는 1999년 10월30일 인현동 한 호프집에서 57명의 10대 학생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지만(당시 경인일보 지면 보기 클릭), 당시 우리 사회에서 '왜 이런 후진적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논의는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와 마찬가지로 비난의 화살이 희생자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인현동 화재 참사는 미성년자였던 희생자들이 호프집을 간 탓에 벌어진 개인의 일탈로 축소됐다.
인현동 화재 참사를 다룬 김금희 작가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에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사고 생존자 경애는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라고 고민한다.
개인 일탈로 축소땐 사회적 갈등만
"소통공간 부족 사회구조 고민해야"
"소통공간 부족 사회구조 고민해야"
인현동 화재 참사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들은 개인의 일탈로 축소되면 똑같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은 멀어지고 사회적 갈등만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원 인현동 학생 화재 참사 유족회장은 "당시 인현동 화재 참사는 '학생들이 술 먹고 죽은 일'로 치부되면서 사고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며 "이태원 참사도 모처럼 축제를 만끽하러 간 젊은이들에게 발생한 안타까운 일이다. 부정적 시각으로만 봐서는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 추모 행사를 주최했던 장한섬 홍예문문화연구소 대표는 "두 참사는 10·20대가 또래들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할 공간을 찾기 위해 방문한 곳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라며 "핼러윈이 외국 문화라는 점에서 일부 시민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청년들이 함께할 기회와 공간이 많지 않은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2·4·6면("동생·친척이 희생자 될수도"… 안타까움에 발길 이끌렸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