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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아빠, 내일 고기 많이 잡아오면 친구들 데리고 와도 돼?"

일흔이 넘은 이재원씨는 23년 전 아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태안으로 낚시하러 간다니 아들이 했던 말이다. 이씨가 아들에게 "너희 먹일 고기 가득 낚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니 TV에는 동인천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희생자 명단 속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그의 아들 이현민군은 1999년 10월30일 청소년 57명이 숨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이씨는 병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부평의 한 병원 안치실에서 아들을 확인했다. 인현동 참사 유족은 아들과 딸의 죽음 앞에 세상이 무너졌다. 이들의 가슴을 더 세게 후벼 판 것은 아이들에게 쏟아진 비난이었다. 사람들은 미성년자였던 희생자들이 호프집에서 숨졌다며 비행 청소년이라고 매도했다. 유족들은 자식을 잘 키우지 못한 부모로 손가락질 받았다.

"학생들이 비행을 저지르면 다 그런 사고에 엮이는 거야. 그러니 학교 지도사항을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인현동 참사를 다룬 김금희 작가 소설 '경애의 마음'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사회는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을 비난했다. "돈 내고 가라"며 학생들이 대피할 출입문을 닫아버린 업주의 잘못과 불법 영업을 눈감아줬던 공무원들의 비리는 뒷전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 수일이 지났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들이다. 이번 사고를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고 치부한 혐오와 낙인은 23년 전 인현동 참사와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았다. 축제를 즐기러 갔다는 이유로 이들의 죽음은 슬퍼할 가치가 없는 걸까. 우리는 인현동 참사 당시 죽음의 경중을 재면서 정작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구조적인 논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엔 부디 이 같은 전철을 답습하지 않길 바란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