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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전설(地轉說) 주장한 덕보(德保) 홍대용(1731~1783)은 지적(知的) 호기심이 왕성했다. 30대 중반에 연행사(燕行使) 서장관으로 임명된 숙부를 따라 청나라 북경에 가는 호기를 잡았다. 두 달을 머물며 선진 문명·문화를 체득했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식견을 넓히고 만리장성(萬里長城)과도 같은 우애를 쌓았다.

덕보는 항저우 출신인 엄성(嚴誠)·반정균·육비와 유독 가까웠다. 셋은 문장과 예술에 두루 능한 대학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덕보를 추앙해 대유(大儒)로 여겼다고 한다. 이들과 더불어 필담한 내용이 누만언(累萬言)에 전한다. 덕보가 귀국하는 날 서로 눈물을 흘리며 "한번 이별로 그만이구려, 저승에서 만나도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맹세한다"며 발길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홍대용의 절친 연암(燕岩, 박지원)은 덕보와 엄성의 각별한 우정을 부러워했다. 동갑내기 엄성과 뜻이 잘 맞았던 덕보는 "군자가 자기를 드러내고 숨기는 것은 때야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에 엄성이 깨우침을 얻어 과거를 접고 남쪽으로 가 칩거했으나 수년 뒤 숨졌다. 부고를 받은 덕보가 제문을 쓰고 제향을 보냈는데, 마침 이것이 고인의 집에 도착한 날이 2년 차 제삿날이었다. 모인 이들이 영감(靈感)이 통했다고 경탄했다 한다. 9년 뒤 엄성이 남긴 유고가 덕보의 손에 쥐어졌는데, 직접 그린 초상화였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홍대용의 유일한 초상화다. 일하제금집(日下題襟集)에 덕보와 청의 석학들이 나눈 필담과 편지들이 전한다.

남양주 실학박물관이 '연경(燕京)의 우정'이란 특별전을 연다. 18~19세기 조선과 중국, 두 나라 지식인들의 소통과 우정을 새김질한다. 홍대용 초상화는 물론 실학자 박제가와 화가 나빙(羅聘)이 주고받은 편지, 선물, 서화를 볼 수 있다. 추사 선생과 당대 최고 대학자인 완원(阮元), 화가 주학년(朱鶴年)의 정(情)은 또 어떠했던가.

특별전은 한·중국 수교 30주년을 기념한다. 근자에 양국관계가 썩 유쾌하지 않기에 울림이 더 클지 모른다. 조상들 교유엔 명리(名利)가 끼어들지 않았다. 순백의 우정을 나눈 당대 석학들과 마주하는 자리다. 자녀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이다. 오가는 길, 팔당호반을 두른 붉은 단풍은 덤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