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온종일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불러댔다. 내가 어릴 적 불렀던 노래와는 가사가 달랐다.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였는데 아이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고 노래한다. 평균 기온 12도, 강수량은 1천300㎜이었는데 아이는 평균 기온 13도, 강수량은 1천800㎜이란다. 그래, 주소도 바뀌었고 기후도 바뀌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다. 200리를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87㎞다. 내 아이와 내가 사는 세상이 이만큼 바뀌었다. 아이는 유튜브에서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찾아달라고 했다. 영상을 켜보니 어라, 아이가 매일 집에서 춤추던 그 모습과 똑같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모두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태권도장에서 배운 거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어지간한 대한민국 아이들은 태권도장에서 다 이걸 배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나 어릴 때 배웠던 국민체조 생각이 났다. '빠라바라바, 빠라바라바' 하는 음악에 맞추어 전 국민이 똑같이 움직였던 그 체조. 우리 세대라면 모를 수 없는 그 풍경. 나는 소파에 앉아 아이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그만 울어버렸다.
"엄마, 왜 울어?"
내 아이는 나중에 자라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친구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 그땐 다 그 플래시몹 따라했잖아. 우리는 어린이집에서부터 핼러윈 파티를 했잖아. 핼러윈 파티 때마다 엄마가 마녀 옷을 사줬고 호박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 동네를 뛰어다녔잖아. 우리 그때 진짜 신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길 것이다.
'독도는 우리땅' 플래시몹·핼러윈축제
내 아이 세대에겐 문화이자 추억이다
핼러윈의 유래가 뭔지 나는 잘 모르지만 해마다 어린이집 핼러윈 파티 공지를 받으면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아이의 코스튬 의상을 골랐다. 어린이집 핼러윈 파티는 소박하고 조용했지만 아이 아빠 회사에서는 매년 핼러윈 파티를 크게 치렀다. 직원 복지 차원이었고 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파티엘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해보았고 유령이 득실거리는 요란하고 즐거운 파티 이야기를 두고두고 했다. 내 아이에게 핼러윈은 소란하고 신나는 파티다.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도 핼러윈 파티도 내 아이 세대에게는 문화다. 추억이다.
이 아이에게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세계가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외국 귀신 놀이를 하겠다고 그 밤에 거기를 돌아다녔다며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한복도 안 입고 단오도 모르는 것들이 이태원이나 쏘다녔다고 흉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까.
가만히 옆에 앉아 내 무릎을 토닥이던 아이가 말한다.
"걱정하지 마. 사람들 많은 덴 안 갈게."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야. 이태원 참사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사람 많은 곳에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야.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탈 배에 화물이 얼마나 많이 실렸는지 구명조끼가 넉넉하게 실렸는지 그것부터 확인하고 타야 하는 게 아니야. 너희는 신이 나서 친구들과 환호하며 배에 오르면 되고 핼러윈이 다가오면 코스튬 의상을 챙겨 클럽으로 떠나도 되는 거야.
'이태원 참사'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파티는 위험한 것이라고 기억할까
죄책감 느끼는 어른되면 어떡하나
내가 훌쩍이는 바람에 잠깐 무르춤했던 아이는 다시 유튜브 음악에 맞추어 독도는 우리 땅 춤을 연습한다. 나를 닮아 영 춤에는 젬병이다. 해밀턴호텔 그 골목은 나도 자주 갔다.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그곳을 잊고 살았지만, 이제는 다시 가고 싶어도 영 스타일이 촌스러워진 나는 엄두를 못 내지만, 나는 날이 추워도 예쁘게 차려입고 힐을 신고 돌아다니던 그날들을 잊지 못한다. 유튜브 속 플래시몹을 즐기는 아이들과 내 딸은 동시대를 살며 나중에 자라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른들이 보내주었으나 수학여행은 위험한 것이고 어른들이 핼러윈을 챙겨주었으나 파티는 사실 위험한 것이었다고 추억할까. 파티 즈음이 되어 몸이 근질근질해지면 곧장 죄책감을 느끼는 어른으로 자라면 어떡하나. 빨개진 코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