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제60주년 소방의 날'이었다. 환갑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이니 특별한 기념행사가 준비됐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청은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서다.
소방의 날은 1963년 11월 1일 시작됐다. 소방 망루에서 화재를 감시하던 시절 화재가 빈발하는 겨울 초입에 기념일을 정했으니 불조심 계몽 목적이 컸다. 1991년 '119'와 같은 11월 9일로 변경하면서 소방관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정부 행사로 자리잡았다.
소방관의 근무 현장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모든 형태의 사고 현장이다. 생명을 구하려면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소방관들이 복무신조로 여기는 '소방관의 기도'의 첫 구절이다. 신의 가호로 초인적 용기를 발휘해야만 화마와 재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수 있다.
야속하게도 신의 가호에도 한계가 있나 보다. 시대의 변화로 재난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소방관들의 희생도 늘었다. 2001년 홍제동 주택 화재에서 6명이 순직했고, 2015년 서해대교 화재에서는 이병곤 소방관이 끊어진 케이블에 희생됐고, 지난해엔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김동식 소방관이 우리 곁을 떠났다. 소방헬기 추락, 구조보트 전복으로 하늘과 해상에서도 순직했다. 심지어 취객에 폭행당해 숨진 여성 소방관도 있다. 우리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소방관을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직업으로 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태원 참사 원인을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했다. 최 서장은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고, 국민에게 최초로 설명한 공무원이다. 마이크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화면은 충격적인 현장을 대변했다. 전국의 소방 공무원들이 최 서장의 현장 대응이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이었다며 경찰 수사를 규탄하고 나섰다.
결정적으로 여론 또한 최 서장과 소방관들을 지지하고 있다. 소방관들이 재난 현장에서 쌓아 온 신뢰 덕분일 테다. '소방의 날' 환갑잔치는 취소됐지만, 국민 신뢰를 확인하는 큰 선물을 받았지 싶다. 순직소방관 235위가 국립묘지에서 영면 중이다. 숭고한 헌신. 감사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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