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곡의 나이 39세에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관찰사라면 최고의 지방 장관이다. 재임 기간은 5~6개월 정도였다. 첫날 관아에서 저녁을 맞았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아리따운 소녀가 주안상을 내왔다. 그녀가 유지였다. 주안상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쳐 물러가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아름다운 몸매에 곱게 단장한 얼굴은 갓 피어난 백합화 같았다.
율곡이 물었다. "몇 살인고?" "열두 살이옵니다."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말투 또한 교양이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일찍이 기적에 오른 선비의 딸이었다. "시침 들려고 온 것이냐?" 어린 소녀여서 율곡은 다시 물었다. 아직 갈래머리 소녀인 동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지는 부끄러워 얼굴에 홍조를 띠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행수 기생의 명을 받들고 왔사옵니다." "아니다. 수종이나 들고 나가거라." 유지가 조용히 물러났다.
그 후 율곡은 유지를 늘 옆에 두고 말벗으로 삼았다. 유지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녀를 예뻐해 주고 아껴주었으나 율곡은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보기만 할 뿐 꺾지는 않았다. 아리땁고 청순한 유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율곡이었다.
나이 39세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해
'선비의 딸' 열두살 관기와 첫 만남
늘옆에 두고 말벗 삼아 마음에 평온
유지는 율곡의 높은 학식과 인품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율곡과 함께하는 시간은 유지에게는 커다란 산 공부고 깨우침이었다. 기녀가 지녀야 하는 몸가짐과 기예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는 늘 몸으로 실천하게 했다.
얼마 후 율곡은 임기를 마치고 한양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지는 율곡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립고 안타까웠으나 찾아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유지에게 율곡은 때론 어버이이고 때론 지체 높은 양반이고 때론 정을 주는 연인이기도 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 깊어지고 커졌다.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1582년 율곡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평양에 가게 되었다. 평양으로 가는 길에 해주 관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원행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율곡은 관아의 침소에서 내일의 여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불을 끄고 눈을 붙이려는데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율곡은 수행원 중 누구인가 싶어 큰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유지였다. 유지가 침소로 율곡을 찾아온 것이다. 성숙한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율곡은 "누구인고" 물었다. "유지이옵니다." 유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것이 유지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유지는 몰라보게 성숙했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활짝 핀 꽃봉오리였다. 유지는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오늘 밤에는 꼭 어른을 모시리라 결심을 했지만, 율곡은 유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쇠약해진 몸
이룰수 없는 사랑 '유지사'에 노래
해가 바뀌었다. 1583년 가을, 건강이 좋지 않던 율곡은 황주의 누님댁에 머물며 요양을 하고 있었다. 유지가 어찌 알고 찾아왔다. 주안상을 마련한 율곡은 유지와 여러 날 동안 술을 마시며 애틋한 정을 나누었다. 그때 지은 노래 유지사에 율곡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안 피어/정만 맥맥히 서로 통했고/중매 설 이가 가고 없어/계획이 어긋나 허공에 떨어졌네/이런저런 좋은 기약 다 놓치고서/허리띠 풀 날은 언제런가/아아! 황혼에 와서야 만나다니/그래도 모습은 옛날 그대로구나/세월 지나감이여! 그 언제런가/슬프다 인생의 녹음이더니/나는 더욱 몸이 늙어 여색을 버려야 했고/세상 정욕 재같이 식어졌다네/저 아름다운 여인이여/사랑의 눈초리를 돌리는가/내 마음 황주 땅에 수레 달릴 때/길은 굽이굽이 멀고 더디구나'.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