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은 사고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김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사고 6일째, 빈소를 찾아 그 이유를 물었다. 김씨의 친형은 "동생이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가족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진상 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김씨의 장례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기사로 작성하고, 한동안 화일약품 사고를 잊고 살았다. 죽음이 다른 죽음으로 잊혀 갔다. 지난 10월15일, SPC계열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졌다. 지난 10월21일, 안성시 원곡면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3명이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시 화일약품 사고와 관련한 소식을 접한 건 20일이 지난 후였다. 경기지역 산재사고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후배 기자가 "화일약품 사고 유가족이 지금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해 줬다.
경인일보 취재진은 다시 빈소를 찾았다. 김씨의 가족이 생업까지 포기하고, 이 싸움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를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책임자 처벌과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 김씨의 어머니는 "아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차디찬 냉장고에 둬야 하는 사실이 원통하고 비참하다"며 "회사 관계자들은 신영이에게 와서 사과하고, 다시는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42일째, 고인의 시신은 여전히 냉장고에 안치돼 있다. 김씨의 부모는 회사로, 길거리로 나가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의 장례가 무사히 치러질 때까지 고인의 가족과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일하다 숨진 자의 죽음이 쉽게 잊히길 바라지 않는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