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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엽록소의 퇴화로 인한 잎의 소멸이다. 입동(立冬) 즈음해 나무는 생존을 위해 잎들 양분을 줄기로 모은다. 잎 속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알록달록 단풍이 들고, 특수 세포층이 형성돼 잎이 분리된다. 이때 생장조절 물질이 분비돼 잎과 줄기의 분리를 촉진한다. 마침내 쓸모를 다한 잎이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이다.

낙엽의 상징어는 이별과 추억일 게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박인환 시인(1926~1956)의 '세월이 가면' 중에서).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왜 몰랐던가'. 스물여섯에 요절한 가수 차중락(1942~1968)은 번안곡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에서 낙엽을 밟으며 옛 연인을 그리워했다.

현실 속 낙엽은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간다'는 군에서 낙엽은 애증의 대상이다. 눈은 어쩌다 내리지만, 가을철 낙엽은 달포에 피해갈 도리가 없다. 종일을 쓸어도 또 쌓이고, 자고 나면 수북한 게 여간 귀찮지 않다. 그래도 나뭇잎 물드는 계절을 두어 번 겪고 나면 제대일이 성큼 다가오지 않던가.

청소원들을 애먹이는 낙엽의 민폐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 주말 요란하게 내린 가을비에 수도권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불과 50㎜ 안팎 강우량에 차량과 행인들이 쩔쩔맨 이유가 가로수 낙엽이 하수구를 막아 물길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천에선 지난 토요일 밤 연수구 청학사거리, 계양구 임학지하차도가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 이날 인천에서만 낙엽이 배수로를 막아 도로가 물에 잠겼다는 호우 피해 신고가 200건을 넘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도 230건 넘는 도로 장애 신고가 접수됐고, 광주에선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

가뭄 끝 단비가 환영받지 못했다. 낙엽 지는 거리에 비가 내리면 침수 피해를 걱정하게 됐다. 가로수 사이 은행잎 고운 거리를 더는 볼 수 없을 듯하다. 시골에서도 토양의 산성화로 썩지도 못하면서 산불 발화가 잦고 낙상사고가 늘었다고 푸념들을 한다. '낭만 자객'이 아닌 '애물' 취급을 받는 낙엽의 처지가 딱하게 됐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