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공농성 중인 이진오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에 철도 정비소에서 일한 증조부 이백만, 역시 일제 강점기 철도학교를 졸업하고 철도 기관사가 된 조부 이일철, 해방 후 철도 기관사 교육을 받고 철도청에서 철도 기관사로 일한 이진오의 아버지 이지산까지 3대에 걸친 철도 노동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황석영 소설가'하면 떠올릴 수 있는 선 굵은 이야기의 힘과 인간 군상이 펼치는 다채로운 삶이 6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 속에도 녹아 있다. 이 삶은 묵직하게 노동운동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흘러간다.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하지만 소설 속 어느 한 인물, 한 장면도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민중의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삶은 역사 한가운데에 이름 없이 묵묵하다.
고공농성 이진오 중심으로 풀어
다채로운 삶 600쪽 분량에 녹여
소설 속 주요 무대는 영등포와 인천이다. 이진오의 증조부인 이백만이 열세 살에 인천으로 일하러 왔고, 결혼한 아내는 주안댁으로 불린다. 인천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던 김삼용이 김근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박헌영, 이재유, 김형선, 김단야 등 사회주의 운동가도 나온다. 그 당시의 중요 공간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가 익숙한 지명이나 짐작 가는 곳을 만날 때마다 와락 반갑기도 하다.
인천을 노동의 도시라고 말한다.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 해안가 매립으로 조성된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 80년대 퇴근 시간이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주안공단과 부평공단의 노동자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인천으로 왔다. 일은 고되고 임금은 열악했다. 공단 게시판에 나붙던 '○○사원 수시모집' 공고가 그걸 증명했다.
쌀을 정미하던 정미공의 파업부터 한국 최초 여성지부장을 탄생시켰던 동일방직의 싸움, 뜨거운 80년대의 민주노조 건설의 열기 등 노동자들은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주먹을 높이 들기도 했다.
소설의 시작도 이진오의 고공농성이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굴뚝 위, 이 막막한 공간을 견뎌내는 방법이 '호명(呼名)'이며 이 소설의 뼈대이다.
인천을 주요 배경으로 해고농성자의 짧은 외출을 담은 이란희 감독의 영화 '휴가'에서도 노동자들은 오랜 천막농성 끝에 법적 싸움에서도 지자 고공농성을 생각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한번 올라갈까?' 라고 말을 한다. 고공농성을 일상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시대, 다시 말하면 노동자들은 이 처절한, 목숨을 건 싸움을 일상적으로 치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노동·사회주의 운동가 나와
'여성 서사'로 숨쉴수있게 하기도
파업을 하면 바로 몇 억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하청에 하청을 주고, 기간제니 인턴이니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노동구조를 만든다. 소설 속에서도 회사와 합의하고 고공농성을 풀었지만 다시 고공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소설은 묵직하게 흐르면서도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과 이백만의 여동생 막음, 일철의 부인인 신금이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로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홍수가 진 영등포에서 초인적 힘으로 사람과 물건을 구한 주안댁, 막음의 출중한 입담, 신금이의 신통력 등은 소설을 전통 리얼리즘에 가두지 않는다.
황석영 소설가는 인천문화재단에서 마련한 북콘서트에서 인천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작가의 문학이 인천의 역사와 잘 맞는다고 했다. 그가 인천에 살며 또 다른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을 쓸까 상상해본다.
김금희 소설가의 '경애의 마음', 박민규 소설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원규 소설가의 '조봉암 평전', 그리고 황석영 소설가의 '철도원 삼대'까지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적 성취가 높은 작품이 인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