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Mask)의 사전적 의미는 얼굴을 가리는 일체의 도구를 말한다. 외부의 해로운 공기가 체내로 흡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눈, 코, 입을 보호하는 것을 포함한다. 동양문화권에서 친숙한 가면이나 탈도 범주에 든다. 보온, 보건, 방역, 방진, 방독을 위해 널리 쓰인다.
코로나 19 이전엔 마스크 착용이 일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건장한 남성이 마스크에 모자를 쓰면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거부감이 컸다. 미국과 유럽권에선 코와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싫어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을 부자연스러운 행위로 본다. 심지어는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살인마의 필수품으로 인식된다.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도 유럽 일부 국가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은 연유다.
반면 소설과 영화엔 마스크를 쓴 영웅(Hero)이 자주 등장한다. 현란한 칼 솜씨로 악당을 제압한 뒤 알파벳 Z를 남기고 사라지는 '쾌걸 조로'는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고담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과 맞서는 '배트맨(Batman)'도 마스크를 써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코미디언 짐 캐리가 열연한 영화 '마스크'는 더 노골적이다. 마스크를 얼굴에 뒤집어쓰는 순간 초능력자로 변신하고,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매력을 발산한다.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손흥민(토트넘)이 지난 16일 카타르월드컵 축구대표팀에 합류했다. 얼굴 보호를 위한 마스크를 쓰고서다. 코치진과 취재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은 밝은 표정으로 첫 훈련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왼쪽 눈 주위는 여전히 부었고, 수술 자국이 남았으나 심각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손은 이날 준비해 온 검은색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토트넘 구단이 그의 얼굴에 맞춰 특별 제작했다는 마스크는 양쪽 볼과 콧등 언저리까지 가린다. 쾌걸 조로나 배트맨 마스크와 흡사하다. 눈치 빠른 언론은 '다크 나이트 손흥민의 등장'이라고 소개했다.
마스크는 얼굴을 감추고 악의 무리와 싸우는 영웅의 상징물이다. 없던 힘도 생기는 영물(靈物)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수비수 김태영은 깨진 머리에 검붉은 마스크를 두르는 투혼으로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마스크 쓴 손흥민은 'Again 2002'의 전조(前兆) 아닌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