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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단장지애(斷腸之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러나 젊은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을 그 어디에 비유하랴. 서둘러 장례의 예를 갖춘 지금. 남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은 온전히 유가족들의 몫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여 일.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흘러가고, 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면서,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면서, 누구 하나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책임을 지는 자세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에 대한 사과 요구는 국가원수로서 통치책임을 묻는 것이다.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장관의 파면이나 해임 요구에는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이 혼재되어 있다. 기관장과 지휘관에게는 공무원으로서의 법적 책임이 있다. 이태원 참사의 수사 끝이 어디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목되는 정무직과 선출직은 버티고, 현장의 경찰관은 죽음으로 항변하고 있다.

대한변협, 민변, 참여연대,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등이 희생자의 유가족을 돕기 위해 나섰다. 법조계나 언론도 국가배상책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와 제5조 그리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이 논거다. 대법원은 다른 사건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정부나 일부 공직자들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무한책임 의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20여일 흘렀는데 책임진 사람 없어
의무 있지만 정부·공직자 애써 외면
英 '힐스버러 참사' 경찰과실로 평결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영국의 힐스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를 생각한다. 1989년 4월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97명이 압사하고, 76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술에 취한 리버풀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사고라고 했다. 유족들이 반발하면서 1997년 재조사가 시작됐으나 흐지부지됐다. 유가족들은 '범죄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쓴 채 외롭게 진상 규명에 다시 나섰다. 2010년이 되어서야 종교인, 의사, 인권변호사 등으로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조사위는 45만여 쪽의 참사 관련 자료와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그 결과 경찰 등 공직자들이 당시 허위를 강요받았으며, 문서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영국 법원은 2016년 4월 '경찰 과실 때문에 무고한 관중들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평결했다. 당시 경찰이 관중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저지선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며, 갑작스럽게 많은 관중이 닥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세워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경황이 없는 유족들에게 국가배상 문제를 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경험상 현재의 수사가 미흡하다면 처벌도 어렵고, 배상책임을 입증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처벌자 논란과 배상책임이 법적 책임 공방으로 가는 경우 피해자인 유가족의 아픔은 치유되지 못한 채 길어질 것이다. 희생자들의 사연들은 너무나 애달프다. 참사 원인을 규명해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는 뜻은 광화문에 모인 국민과 같을 것이다. 만약 수사와 책임이 미진하다면 영국처럼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치나 국정조사를 피할 수 없다.

산자가 해야할 일… 원인·책임 규명
진정한 배상·사죄로 국가 품격 정립


대통령실은 국가배상과 관련해 '당연히 국가가 할 수 있는 법적 책임들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밝힌 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수사결과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낼 일이 아니다. 지금 산자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이다. 그리고 법이 정한 배상을 받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외국인 희생자에 대한 배상이나 해당 국가에 대한 사과도 세계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참사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한 사죄와 배상 그리고 추모의 공간을 통해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는 물론 국가의 품격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