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지난 18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최고 고도 6천100㎞까지 올라가 최고 속도 마하 22로 비행한 ICBM의 정상각도 발사 사정거리는 1만5천㎞. 사정권에 미국 전역이 포함된다. 한·미·일을 비롯한 자유진영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북한 ICBM에 놀란 세계 언론은 곧바로 김정은의 기행으로 오리무중에 빠졌다. 조선중앙통신이 19일 ICBM 시험발사를 참관한 김정은과 딸의 모습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부녀의 등장에 ICBM은 졸지에 배경으로 희미해졌다. 전 세계를 긴장시킨 핵무력 과시 현장에 아빠 손을 잡고 등장한 소녀의 밝은 미소라니, 기괴하다.
ICBM과 김정은 부녀, 국내외 언론들의 추측이 난무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무장이 대를 이어 진행될 세습 과제임을 천명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핵무장 포기는 없다는 메시지라는 얘기다.
가장의 실패가 드러날 현장에 가족을 동반할 리 없다. 딸뿐 아니라 부인과 여동생 등 백두혈통 모두가 참석한 것은 ICBM 개발 완료 선언과 같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딸이 4대 세습의 주인공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지켜볼 일이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악행과 기행으로 종잡기 힘들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총살하고 백두혈통의 적자이자 이복 형인 김정남을 암살했다. 한물 간 미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과 절친이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는 세 차례 정상회담으로 국제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도보다리'를 같이 산책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 욕하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박살냈다.
세습 전제군주는 세습 권력을 대를 이어 유지하려 악행과 기행을 서슴지 않는다. 평가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우리 사회에도 김정은을 전근대적인 세습독재자로 보는 보편적인 평가와 유시민처럼 계몽군주로 보는 시선이 혼재해 있다. 한 국가, 한 도시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탄두를 탑재할 ICBM 발사현장에 등장한 하얀 패딩의 10대 소녀. 핵미사일을 물려받은 북한 4대세습 체제를 상상하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한편에서 하얀 패딩의 소녀에게서 계몽군주 가문의 선의를 읽어낼 사람들도 있을 테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어 헷갈리는 김정은의 행보이다. 그의 선의가 아니라 악의에 대응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을 건사할 수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