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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지난달 울산 전국체전 개·폐회식을 보면서 민선 체육회장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개회에 앞선 간담회에 윤석열 대통령과 마주한 건 광역단체장이 아닌 시도 체육회장단이었다. 시·도지사 자리가 체육회장으로 바뀐 거다. 폐회식에선 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이 시상대에 올라 종합우승기를 휘둘렀다. 전(前)엔 도지사가 광(光)을 냈다. '대한민국 체육 자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체육진흥법 개정에 맞춰 2020년 전국 광역·기초단체 체육회가 민선 시대를 열었다. 지자체장이 관행적으로 겸했던 시·도, 시·군·구 체육회장 자리가 민간에 넘겨졌다. 체육인들이 정치권에 휘둘리고, 체육회가 단체장의 선거조직으로 전락한 세태를 바로잡자는 취지다. 과거엔 시·도 체육회장이 상급기관장인 대한체육회장을 아랫사람 보듯 했다.

민선 체육회장은 쓸모가 많은 자리다. 정치인은 더하다.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단상에 올라 축사를 한다. 체육계 인사들과 만나 친목을 다지고,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전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다. 광역의회나 단체장 출마를 위한 디딤돌로 이만한 게 없다. 재임 중에도 사퇴하지 않고 총선, 지선에 나설 수 있다. 낙선한다 해도 복귀하면 그만이다. 출마 기탁금이 2천만~5천만원이나 되고, 매년 기부금을 내는데도 입후보자들이 괜히 줄을 서는 게 아니다. 


2018년 개정 체육진흥법, 자치 정신 '허점'
예산편성 권한 여전히 지자체·의회 움켜줘


친위대를 잃게 된 단체장들은 입이 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견인을 내세우는 꼼수를 썼다. 지역마다 도지사, 시장, 군수가 특정 후보를 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후보자들도 단체장과의 각별한 인연과 지원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곳곳에서 이변이 속출했다. 이런 연유로 단체장과 체육회장의 갈등은 필연일 수 있다. 경기도가 대표 사례다.

민선 1기 경기도체육회장 선거에 후보자 3인이 나섰다. 이재명 도지사가 특정 후보를 민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체육인들은 이원성 후보를 택했다. 경기도생활체육회장을 역임하며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이 지사와 체육회가 바라지 않은 나쁜 결과다. 체육회 선관위는 어정쩡한 사유로 당선 무효 결정을 내렸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수개월 뒤에야 민선 회장이 취임했으나 냉랭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지사는 체육회장을 외면했고, 민선 전 임명된 사무처장은 사표를 던졌다.

이상한 일이 따랐다. 도는 체육회 감사에 착수했다. 예산을 삭감해 직원들 임금도 못줄 지경이 됐다. 도의회는 체육진흥재단을 만들겠다며 입법 활동에 나섰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하고 민선 시대를 연 체육진흥법 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조례를 바꿔 경기도체육회관 운영자를 경기주택도시공사로 이관했다. 사격테마파크, 유도회관도 인수 목록에 담겼다. 보금자리를 빼앗긴 체육인들의 항의와 비난 여론이 들끓었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2018년 개정된 체육진흥법은 체육 자치 정신을 담았으나 허점이 많다. 입법 과정에서 체육계 의견 청취와 수렴 절차를 간과했다. 정당에 가입한 정치인들의 출마를 허용한 것은 '정치와 체육의 분리'란 대의에 맞지 않는다. 정치 퇴물과 체육인의 탈을 쓴 사이비들 득세를 막을 수 없다. 예산편성 권한은 여전히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틀어쥐고 있다. 지방권력과의 거리 두기가 만만치 않은 연유다.

민선2기 회장 선거 벌써 단체장 친분 들먹여
1기처럼 자력으로 정치권력 굴레 벗어나야


내달 민선 2기 체육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도전과 수성, 관록과 패기가 맞서는 열전의 장이다. 벌써 단체장과 친소 관계가 들먹여지고 누구의 대리인이 거명된다.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인사가 출마하는 지역도 있다. 애정이 없기에 기회만 되면 회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인물이다.

2016년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권력자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를 도운 여성후보를 지원했으나 이기흥 후보에 패했다. 이 회장은 4년 뒤 문재인 정부에서도 5선 의원 등 친여 유력인사들을 제치고 연임했다.

체육계는 반정부 인사가 수장이 된 사실에 흥분했다. 민선 1기 시도체육회장 선거도 경기, 전북에서 도지사 뜻에 반하는 후보가 당선됐다. 체육인들 사이에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환호성이 터졌다. 자력(自力)으로 정치권력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체육 자치'의 성패, 체육인들 손에 달렸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