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인구가 많은 건대역 2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건대글방'은 십수 년 전 만남의 장소였다. 서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서점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북적거린다고 할까. 누군가를 기다리기 가장 좋은 장소는 서점일 것이다. 카페처럼 돈을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책 표지와 제목을 훑어보거나 첫 문장을 읽어보는 것은 갈피에 낀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건대역 2번 출구 자리… 만남의 장소
서점은 바깥과는 다른 시간이 흘러
차 돌진으로 진열된 책들 '교통사고'
자리 옮겼으나 지금은 카페가 입점
문 닫아도 책·사람들 소멸하지 않아
건대역 거리는 도시의 많은 유흥지와 마찬가지로 술집과 헤어샵과 옷가게와 카페와 길거리 좌판으로 덩어리진 거대한 생물체 같은 느낌을 준다. '젊은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하는 골목은 요란한 네온 간판으로 뒤덮여 있고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와서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소돔과 고모라'가 떠올랐으며 값에 비해 놀랍도록 맛이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을 터인데…'라는 탄식을 괜히 흘리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대 앞 상권은 기죽는 날이 없었으며 부지런히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망하고 재정비하며 모습을 바꿔나갔다.
그 가운데 서점은 그야말로 소금과 같은 존재로, 바깥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서점을 드나든 횟수에 비해 구입한 책은 너무도 적다. 더구나 건대글방에서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산 것은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였으니 이 서점을 떠올리면 빚진 마음이 든다.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놀랍게도 이 문장은 사실이다. 술 취한 차량이 서점을 향해 돌진했고, 차의 절반이 유리창을 부수고 실내로 들어갔다. 진열된 책들은 그야말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서점 주인은 파손된 서적 가운데 쓸만한 책들을 추려서 헐값에 팔았는데, 나는 며칠에 걸쳐 보르헤스 전집 5권을 비롯해 상당한 책들을 사 가지고 왔다. 책들은 약간 우그러지고 먼지가 덮인 면이 없지 않으나 멀쩡했고, 이런 책들을 권당 천 원씩에 사왔으니 기쁘면서도 양심이 따끔거렸다.
이후 서점은 근처 지하에 자리를 옮겨 명맥을 유지했지만 몇 년 버티지 못했다. 건대글방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과 밖의 공기가 완전히 다른, 유흥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기에 지하에서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입점해 있다.
십수 년이 지나 포춘 쿠키에서 나온 종이 같은 책갈피의 문장을 다시 보니 어쨌든 나는 뜻을 이룬 셈이다.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후에 보르헤스 다른 책과 강연록도 읽고, 눈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던 소년 알베르토 망겔의 책도 읽고, 아무튼 자취를 따라 닥치는 대로 읽어왔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갈라져 나온 좁은 골목이 나에게도 뻗어왔는지 어느새 그 길에서 읽고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점의 생명력은 참으로 긴 것 같다. 문 닫은 지 오래된 서점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사온 책들, 그리고 그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동안 소멸하지 않으니 말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옆구리가 살짝 우그러졌던 보르헤스의 책은 내 책장의 중심부에 꽂혀 있으며, 긴 세월 동안 육중한 모비딕과 돈키호테 사이에서 오히려 허리가 꼿꼿해졌다. 책장을 펼쳐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사라진 서점과 그 안에서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오래전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건대역 거리는 도시의 많은 유흥지와 마찬가지로 술집과 헤어샵과 옷가게와 카페와 길거리 좌판으로 덩어리진 거대한 생물체 같은 느낌을 준다. '젊은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하는 골목은 요란한 네온 간판으로 뒤덮여 있고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와서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소돔과 고모라'가 떠올랐으며 값에 비해 놀랍도록 맛이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을 터인데…'라는 탄식을 괜히 흘리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대 앞 상권은 기죽는 날이 없었으며 부지런히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망하고 재정비하며 모습을 바꿔나갔다.
그 가운데 서점은 그야말로 소금과 같은 존재로, 바깥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서점을 드나든 횟수에 비해 구입한 책은 너무도 적다. 더구나 건대글방에서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산 것은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였으니 이 서점을 떠올리면 빚진 마음이 든다.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놀랍게도 이 문장은 사실이다. 술 취한 차량이 서점을 향해 돌진했고, 차의 절반이 유리창을 부수고 실내로 들어갔다. 진열된 책들은 그야말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서점 주인은 파손된 서적 가운데 쓸만한 책들을 추려서 헐값에 팔았는데, 나는 며칠에 걸쳐 보르헤스 전집 5권을 비롯해 상당한 책들을 사 가지고 왔다. 책들은 약간 우그러지고 먼지가 덮인 면이 없지 않으나 멀쩡했고, 이런 책들을 권당 천 원씩에 사왔으니 기쁘면서도 양심이 따끔거렸다.
이후 서점은 근처 지하에 자리를 옮겨 명맥을 유지했지만 몇 년 버티지 못했다. 건대글방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과 밖의 공기가 완전히 다른, 유흥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기에 지하에서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입점해 있다.
십수 년이 지나 포춘 쿠키에서 나온 종이 같은 책갈피의 문장을 다시 보니 어쨌든 나는 뜻을 이룬 셈이다.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후에 보르헤스 다른 책과 강연록도 읽고, 눈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던 소년 알베르토 망겔의 책도 읽고, 아무튼 자취를 따라 닥치는 대로 읽어왔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갈라져 나온 좁은 골목이 나에게도 뻗어왔는지 어느새 그 길에서 읽고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점의 생명력은 참으로 긴 것 같다. 문 닫은 지 오래된 서점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사온 책들, 그리고 그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동안 소멸하지 않으니 말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옆구리가 살짝 우그러졌던 보르헤스의 책은 내 책장의 중심부에 꽂혀 있으며, 긴 세월 동안 육중한 모비딕과 돈키호테 사이에서 오히려 허리가 꼿꼿해졌다. 책장을 펼쳐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사라진 서점과 그 안에서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오래전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