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테 안경 속 정리된 눈썹이 인상적인 초로의 사내는 회장의 운전기사였습니다. 쉬이 감정을 드러내서도, 격한 표현을 쏟아내서도 안되는 직업을 가진 탓인지 연신 차분한 언행을 이어가던 그는 '선감학원' 이야기를 꺼내자 가쁜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사내가 반백년 가까이 봉인했던 기억을 꺼낸 건 2년 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선감학원피해자신고센터는 사내에게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접수하라고 안내했습니다. 높고 두텁게 벽을 쌓아 현실로 넘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을 과거가 현재로 회귀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날의 공기, 구타를 당하며 코 속에 맺힌 옅은 피비린내, 퍼먹었던 황토의 부드러운 질감, 내리 쬐는 햇볕이 염전에 반사돼 얼굴을 비췄던 기억까지. 잊었다고 생각한 고통은 몸과 정신 곳곳에 아로새겨져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선감학원 특별기획'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40년 동안 운영된 소년수용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4천689명이 거쳐 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시설에는 이루 말 못할 사연이 굽이굽이 배어 있습니다.
1942년부터 40년간 운영된 수용소
강제 노역·폭행 등 모진 고통 겪어
지난달 20일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선감학원은 과거에 자행된 일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외부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경기도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선감학원은 40년 전 문을 닫고 사라졌지만, 지방자치 시행 이전 관선 도지사 시대 벌어진 심각한 국가 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은 생존 피해자, 유가족 여러분께 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습니다.
선감학원은 한국이 근대국가의 얼개를 갖추고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짙게 드리운 그늘입니다.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민주적 정치체계를 갖추고 유년~소년기 교육에 바탕하여 '국민'을 양성하는 근대국가는 표준화된 인간상을 원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남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을 거리에서 '수거'해 별도의 수용시설에 가뒀습니다. 책, 방송, 교육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선 국민이 가져야 할 표준, 국가가 말하는 기본 역량을 갖춘 표준화된 국민의 모습이 전파됐고 그 외의 사람들은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됐죠.
반백년 흘러 생존자들 끔찍한 증언
김동연 지사, 경기도의 잘못 '인정'
선감학원은 바로 이 과정에서 탄생한 국가 폭력의 한 양태입니다. 이른바 '부랑자'로 취급된 아이들을 모아 섬에 가두고 강제 노역과 폭행을 행사한 것입니다.
국토에 신도시가 세워지고 도로가 깔리고 빌딩이 올라가는 동안 외딴 섬 속에 수거된 아이들은 모진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눈부신 민주화와 산업화가 선진 한국이라는 빛나는 결실을 이루는 동안 소거된 아이들 몸과 마음 속의 상처는 짙어져만 갔습니다.
반 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겨우 생존한 그들이 전하는 말은 끔찍합니다. 혹자는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을 수밖에 없고 높은 산은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고 말합니다. 전후 폐허가 된 국가를 불과 50년 만에 세계 10대 강국으로 일군 성취 뒤에 숨겨진 아픈 기억을 꺼내는 게 불편한 일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먼 과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얼마 지나지 않은 근 시일의 사건 같기도 한 이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만이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기 때문입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