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요소 중 중요한 것은 관용과 절제의 규범이다. 그리고 정당의 '문지기'기능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는 증오의 정치는 정치기능 자체를 형해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야 어느 정당도 정치적 양극화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치가 갈등의 조정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기득권과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서 당 지도부의 생각에 맹목으로 추종하는 지금의 정치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정치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들 정당 민주주의 따위 관심 없어
거대 양당, 정치 양극화 편승 '공천의식 탓'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을 대표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만 보고 하는 정치에 익숙해 있다. 진영 내의 존재감을 확립하고 공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극적 발언과 비이성적 언어를 쏟아내고 저급한 담론을 생산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단순 인지도 제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영 내의 '투사'가 되기 위해 계산된 저질 발언을 배설하듯이 내뱉으면 언론은 이를 연일 보도하고 방송은 이들을 불러서 백해무익한 논란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사라지고 억지와 견강부회, 논리의 비약만이 남는다. 민생과 한국사회의 균열축으로서의 담론과 쟁점들은 사라지고 저급한 지라시 수준의 언어들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횡행한다.
여야 정치지도자는 물론 국회의원들은 정당의 민주주의의 제도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정당 기능이 제도화되려면 당내 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어떠한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정치현실이다.
여야 거대정당들이 정치의 양극화에 편승하여 극렬 지지자들을 의식하는 것은 공천을 의식해서이다. 이러한 정당체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정당이 정치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정당체제 안정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정당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정당이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운영되고 당내 이견이 봉쇄되는 구조는 정당 내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통로의 원천봉쇄로 이어진다.
거대 양당들이 기득권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면서 양극단의 정치를 동력으로 삼는 한 경쟁적이고 다원적인 정당체제로 전환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현행 공천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국회의원들은 정당에 종속된 기능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당은 대통령실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야당은 극단적 지지자들에 포획되어 강성 의원들의 발언만이 과대대표된다.
'정치불신 최고조' 여야 지지율 30%대 답보
'대통령-여당만의 회동'… 리더십에 배치
공천제도의 혁신, 당내 민주주의의 확립 등이 연계되어 있지만 당장 이러한 제도화를 통해서 정당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우선 중요한 것은 여야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규범을 익히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된다면 자제와 이해, 상호관용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지성적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정당기능의 제도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 정기국회기간 임에도 저급한 이슈와 수준 이하의 논란들이 꼬리를 물고 갈등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정치담론은 실종됐다.
국민은 1987년 민주화와 박근혜 탄핵을 이뤄낸 저력을 가지고 있다. 당장은 정치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력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불신의 수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여야 정당의 지지율이 30%대에서 답보를 보이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여야 지도자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포용적 리더십을 가지고 극한적 대치를 풀 수 있는 물꼬를 터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만의 회동이 이러한 리더십과 배치되는 것은 자명하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