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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사회교육부 차장
한국어 아름다움은 섞임에 있다. '신문'이란 단어도 한자다. 대체로 명사는 한자가 많고 순 한글이라고 불리는 말은 형용사가 주다. 오랜 기간 한자 문화권에 있었기에 한자를 제외하곤 한국어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들도 어려운 말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쓰려 노력한다. 대개 한자를 담은 단어를 풀어쓰는 경우가 많다. 갈등을 다툼으로 노후는 낡음으로 인접은 가깝다로 바꾸는 식이다. 한자 문화에서 영어 문화로 바뀌며 영어를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리모델링이란 말을 탈바꿈으로 바꾸면 어색해 결국은 단어를 그대로 쓴다.

얼마 전 후배가 쓴 기사를 고치려다 두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봉쇄투쟁과 엄중대처였다. 봉쇄와 투쟁, 엄중과 대처 모두 일상에선 쉬이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지만 단어에 섞인 맥락 때문에 골똘했다. 하나는 노조가 보내준 자료에 나온 말이고 하나는 행정부가 보도자료에 쓴 말이었다.

길을 막는 걸 투쟁이라고 부르고 불법을 대응한다는 상식을 엄정이라고 부르는 대척의 말이었다. 서로 섞이지 않는 이 말들을 바꾸지 못했다. 봉쇄투쟁을 봉쇄로 엄중대처를 대처로 바꾸려 했지만 그런다고 의미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비정규직, 화물, 지하철 등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지거나 벌어질 예정이다.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회색 지대가 사라진 상황이다. 한 발을 디뎌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밀리면 죽는다'는 전쟁 용어만 남았다. 가운데로 오지 않으니 섞일 리 만무하다.

이제사 저 두 단어를 고치지 않은 게 후회된다. 단어를 고칠 뿐 아니라 사회에 회색지대를 만드는 게 언론 역할이다. 기자는 한국어를 다루며 매일 섞인 언어로 현실을 전한다. 한국어가 말하는 건 순 한글도 순 한자도 순 영어도 각자론 한국어를 이룰 수 없고 섞이고 바뀌어야 온전한 한국어가 된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자기 입장만을 말할 때가 회색지대에서 섞임을 얘기할 때다. 봉쇄투쟁과 엄중대처 사이에 작은 점을 찍어야겠다.

/신지영 사회교육부 차장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