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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풍운의 정치부 기자가 전하는 대통령실 이야기】

지금 여권에서 '정적'으로 통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유승민 전 의원은 과거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검사 출신의 윤 대통령은 정치인 유승민 전 의원을 꽤 신선하게 봐 왔고, 유 전 의원도 윤 대통령(당시 검사)의 '쿨'한 성격을 좋아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목격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앙금이 깊어져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회복 불능의 관계까지 갔다는 게 정설이지요. 그런 두 사람이 케케묵은 '해원'을 풀 수 있을까?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아니올시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을 많이 하지요.

실현 가능성 '제로'로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 회복에 대해 '유승민 등판'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반등과 국면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와 기자의 귀를 의심케 하고, 흥미를 끕니다.

육도(六韜) 삼략(三略)을 통달한 이는 아니지만, 정치 책사로 활약할 재능과 능력을 갖춘 한 여권 인사는 기자와 만나 "아무리 봐도 유승민 카드 외에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며 유승민 등판론을 제안하더군요.

유 전 의원은 대선 경선 때부터 윤 대통령(당시 윤 후보)과 각을 세워, 정치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앙숙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김은혜를 '대체카드'로 활용하면서 감정의 골이 더 패였지요.

유 전의원은 경선에서 패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객의 칼에 맞았다'(4월22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졌다"며 악평을 한 것이지요. 그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거침없는 말과 글을 쏟아내며 윤 대통령을 저격했습니다. 내부에선 '이재명보다 윤석열을 더 공격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저격수'를 자처했습니다.

이는 세력 간 갈등으로 확전되었고, 돌이킬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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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과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주자였을 당시 호남권 합동토론회를 앞두고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 2021.10.11 /공동취재

그런 유 전 의원이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권에서 '계륵'이 되는 느낌입니다. 2말 3초(내년 2월 말 3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를 앞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유 전 의원이 독보적인 1위를 달리는 조사가 많습니다. 유 전 의원에 반해 여럿 친윤계 인사들의 지지율은 별 의미 없는 수치입니다. 그래서 '1대 다자'구도로는 유 전의원을 이길 수 없어 보이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30%대로 답보할 경우 1대1 양자 구도에서도 친윤계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유 전의원의 활용카드가 흥미롭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곧바로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추진하겠다고 파상공세를 펴고 있는 시점. 이태원 사고의 문책에 한덕수 국무총리 경질론으로 유 전의원 등판론을 제기합니다.

여권 내부에서 보고서가 상층부로 올라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꽤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경제에 해박한 정책통인 유 전의원을 국무총리에 기용하게 되면 윤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빛날 거랍니다. 가뜩이나 국제적 '3고'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악재를 돌파할 새로운 계기가 필요한 시기에 유 전의원의 역할에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지요.

여야 정치권은 지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파면을 놓고 정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무총리를 경질하면 굳이 행안부 장관을 경질해야 할 이유도 축소된다는 뜻도 내포돼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유 전 의원을 발탁하면 유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도 막을 수 있습니다. 유 전 의원이 빠지면 긴장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가 마련되는 셈이지요. 아마 유 전의원이 출마하지 않으면 권성동·안철수·김기현·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 등 친윤계 또는 비호감 없는 범 윤석열계 인사들의 리그전이 뜨거울 겁니다.

이렇게 되면 22대 총선에서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수도권 의석수에서 전멸 상태입니다. 전체 수도권 121석 가운데 경기 7석, 인천 2석, 서울 8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중도층과 수도권에서 인기가 있는 유 전 의원이 경제 총리로 활약하면서 수도권에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총선에서도 중도 확장성에 도움이 된다는 전략입니다. 수도권과 중도층을 흡수하지 않고 영남 편중으로 원내 1당을 탈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과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정국도 한 층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내부 보수 지지층에선 유 전의원에 대한 반감도 있겠지만, 이건 윤 대통령이 해소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과거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기용해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사례는 세계 정치사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이 코너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국민의힘과 여권 내부에서 무상한 권력(?)앞에 찍 소리 못하는 정치인들의 한계를 뛰어 넘어 두 사람의 감격적인 해후를 만들어 내려는 상상력을 들으면서 여권의 난제를 그려 봅니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