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사진은 죽지 않았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영역은 아직 남아있다.
그 날, 그 시간의 그 장소. 단 하나의 인화지에 새겨진 세상에서 단 하나의 사진 작품. 닻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 맥카우 사진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면성을 가진 사진의 틀을 깬 작가 특유의 개성과 독창성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형 카메라로 인화지 태우는 방식 작업
알래스카 태양 궤적 기록한 '서킷' 시리즈
크리스 맥카우는 직접 개조한 대형 카메라에 빈티지 인화지를 넣고 렌즈를 통해 들어온 태양 빛이 인화지를 태우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돋보기로 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원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 작은 구멍이 뚫려 있거나, 태양이 뜨거나 지는 위치에 따라 긴 꼬리 모양으로 탄 자국들이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복제되지 않는 네거티브 원본이라는 것은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 맥카우의 작품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그는 2000년대 초 별을 촬영하기 위해 장노출을 하다 미처 닫지 못한 셔터에 들어온 아침 태양열로 필름이 변형된 것을 본 뒤 이를 작품에 접목했다. 그렇게 그의 대표 시리즈인 '선번(Sunburn)'은 아날로그 사진 도구와 시간의 흐름 즉, 사진과 역사를 연결하는 시도가 됐다.
그의 작품에는 고유한 기록성은 물론 작가의 어떠한 개입도 허락하지 않는 자연의 우연성도 함께 녹아있다.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작가는 오랜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느리게 움직이는 태양의 움직임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길게는 80여 시간까지 장노출을 하기도 했다. 그 길고 긴 태양의 호흡이 숨 쉬고 있는 작품이 바로 '서킷(Cirkut)' 시리즈이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알래스카에 머무르며 3박 4일간 태양이 뜨고 지는 자연을 촬영했다. 이 작품은 연출을 위해 닻미술관에서 작가의 원본을 재현한 것으로, 휘어진 곡선 형태 속 태양의 궤적과 그 사이로 보이는 시간과 날씨의 변화들은 자연이 주는 변주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아날로그' 대하는 과학자적 태도 엿보여
끊임없는 탐구·열정… 내년 1월 15일까지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작가의 과학자적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들도 있다. '헬리오그라프(Heliograph)'시리즈는 두 가지 이상의 시공간에 일어나는 태양의 궤적을 한 인화지에 태운 작업이다. 여러 형태로 깊게 팬 자국은 그 모습도 하나의 추상화 같지만, 빛에 타 우그러진 인화지 사이로 보이는 공간이 조형성을 느껴지게 한다.
'폴리옵틱 (Poly-Optic)'시리즈는 카메라에 렌즈를 여러 개 배치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여러 개의 동그란 렌즈 속에서 보이는 하나의 태양 빛은 각각의 렌즈마다 조리개를 조절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로 흔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전시에는 오랜 노출로 서서히 만들어진 해안의 독특한 풍경을 금속의 느낌으로 표현한 '타이달 (Tidal)' 시리즈와 작가가 여러 형태로 도전해 본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의 근원적 특성에서 시작해 끊임없는 탐구와 그에 대한 열정으로 이뤄낸 고유한 가치, 유일무이한 크리스 맥카우의 작품은 내년 1월 15일까지 광주 닻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