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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새벽 대한민국이 흔들렸다. 실낱 같던 희망이 현실이 되는 드라마에 전 국민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한국의 월드컵 16강 기적은 필연과 우연이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면서 완성됐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지만 객관적 전력은 열세였던 한국이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호날두의 등 패스로 김영권이 동점골을 만들고, 손흥민의 절묘한 패스는 수비수 다리 사이로 빠져 황희찬의 오른발에 걸렸다.

한국이 투지로 만든 기회를 특급 도우미 가나가 기적으로 완성시켰다. 수비에 집중하고, 선수 교체로 시간을 끌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골잡이 수아레스의 '나쁜 손' 때문에 8강에서 탈락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가나 대통령은 "12년 동안 기다려 온 복수"라 했고, 가나 수비수는 "우리가 16강에 못가면 우루과이도 못가게 막자"고 독기를 뿜었다. 수아레스의 원죄와 가나의 복수가 한국의 행운을 빚었다.

워낙 극적이라 기적이라지만, 국가대표팀의 16강 진출은 원팀의 투지가 일구어낸 성과이다. 우루과이와 0-0으로 선전했고, 가나엔 0-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다. 우루과이전에서 졌거나, 가나전에서 경기를 포기해 2골을 만회하지 못했다면, 수아레스의 재앙도 가나의 도우미 역할도 소용없었다.

가나전 스타 조규성은 16강 진출 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문장이 적힌 태극기를 펼쳐들었다. 원전은 e스포츠의 월드컵이라는 2022 '롤드컵'에서 우승팀을 이끈 프로게이머 데프트(김혁규)의 인터뷰란다. 만년 언더독(약자) 데프트는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이길 수 있다"며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기자가 이를 '중·꺾·마'라는 제목으로 요약했다. 이 제목에 '심쿵'한 MZ세대들이 월드컵 대표팀 응원에 재활용하자 이젠 국민적 관용구로 자리잡을 태세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들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손흥민의 인터뷰도 '중·꺾·마'와 같은 맥락이다.

근심 많은 나라와 국민에게 월드컵 대표팀의 선전이 보약 같다. MZ세대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대표팀을 통해 전 국민이 공감했다. 국민이 원팀이 되면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도 기적처럼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다. 원팀의 연대를 깨는데 여념이 없다. 정신 좀 차리자. 제발.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