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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열강(列强)들 공동묘지다. 미국 중국 프랑스와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이력을 지녔다. 1964년 자작극인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전을 일으킨 미국은 부녀자에 어린이까지 동원한 게릴라전에 밀려 10년 만에 철군했다. 칭기즈칸의 몽골대제국(원나라)은 아시아 전역과 동유럽을 휩쓸었으나 베트남은 정복하지 못했다. 영웅 쩐흥다오는 수전에 약한 몽골군을 유인해 수장시켰다. 세 차례나 침입을 막아내 무신(武神) 반열에 올랐다. 조선의 이순신과 비교되는 명장으로, 하노이시 곳곳에 그의 동상이 있다.

하노이시 중심부에 전쟁·역사기념관이 있다. 미국과의 통일전쟁을 상기하는 기록물과 무기가 전시돼 있다. 잔혹한 장면이 담긴 사진과 유물이 많아 둘러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20여 년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이 베트남 기자협회 초청으로 하노이를 방문했다. 당시는 베트남전 여운이 남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간담회 자리에서 베트남 공산당 고위 간부가 베트남전에서 맹위를 떨친 한국군과 대한민국에 대한 소회를 내비쳤다. "(한국을)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그러나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 서늘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국가권력 2위인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오늘 광주시를 방문한다. 수교 3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 초청으로 지난 4일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푹 주석은 이날 관내 다문화가정을 방문한 뒤 방세환시장과 환담한다. 남한산성 아트홀에선 전시회와 양국 합동 공연이 열린다.

광주시 등록 베트남인은 1천420명(남 704명, 여 716명)이다. 유학생, 결혼이민자, 기능인 등 거주사유가 다양하다. 베트남인들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다. (사)올프렌즈는 베트남 출신 전도사가 매주 모임을 주선한다. 서문교회에선 일요일 예배와 한국어교육을 한다.

푹 주석은 지한·친한파 인사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을 만나 대규모 투자에 고마움을 표했다. 2018년 동남아시아축구대회에서 베트남이 10년 만에 우승하자 선수가 받은 메달을 빼앗아 박항서 감독에 걸어줘 웃음을 줬다. 사흘 여정, 시간을 쪼개 광주를 찾는다. 별 인연도 없는데 방 시장 요청을 선뜻 받아들였다고 한다. 광주시가 양국 우호의 강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