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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문법도 법인데 시대에 맞게 수정되고 진화할망정 여러 문법을 둘 수 없다. 여의도 문법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1번지 여의도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언어 습관과 관행을 문법에 비유한 표현이자 국민의 정치 신뢰도에 대한 은유이다. 언어의 품격은 사람과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 여의도 문법은 국민의 정치 신뢰도에 따라 존중과 경멸로 용례가 엇갈린다.

불행하게도 최근 회자되는 여의도 문법은 경멸적인 정치행태를 은유한다. 정략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사실로 주장한다. 진실이 드러나도 반성은 물론 사과도 없다. 맥락 없는 가정과 과장으로 지지 진영을 선동하고 상대 진영을 모욕한다. 제1야당 덕분(?)에 대중은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여의도 문법의 실체를 알게 됐다.

거짓 사실로 주장 진실 드러나도 사과없어
김의겸·장경태 구사한 문법 기초는 적대감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은 저 혼자 '청담동 술자리'라는 가상공간에 갇혀 존체를 상했다. 한 여인이 늦은 귀가를 변명하려 지어낸 가상공간이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굴지의 로펌 변호사 30여명을 가두기엔 너무 허접했다. 아무도 안 믿을 일을 저 혼자 믿었다. 이태원 참사 추모 영상을 켜두고 떡볶이 먹방을 벌인 유튜버들과의 협업, 결과는 참담했다. 

 

김의겸은 여인의 자백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윤석열 대통령 등"에게 "유감"을 표했다. 유감(遺憾)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 해도 다시 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과도 아닌 가정법 유감 표명에, 피해 당사자인 한동훈 법무장관은 '등'으로 퉁쳤고, 반복적 가해 의지를 덧붙였다. 김의겸의 여의도 문법이 국문법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장경태 의원은 대통령 부인을 겨냥한 '빈곤 포르노'와 '조명 촬영' 사이에서 맥락 없이 헤매다 해외에 언론사를 창간(?)했다. 사과는 없다. 김의겸과 장경태가 구사한 여의도 문법의 기초는 적대감이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사법적 압박을 정권의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진영이 열광하고 대표는 고마워한다. 이 대표 본인도 여의도 입문 전부터 여의도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이 대표 문법에 따르면 대장동 사건은 '이재명이 설계하고 윤석열이 몸통이며 유동규가 검은 돈을 받은' 사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훈 전 안보실장이 구속 위기에 몰리자 두둔하고 나섰다.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했다는 것이다. 획득 가능한 모든 정보와 정황을 분석해서 대한민국 공무원 이대준씨의 월북 사실을 추정했으니, 조작도 은폐도 없었다는 정황을 강조한다.

제1야당 권력 흔들리고 화물연대 파업 주춤
정치적 의도 말 같지않은 말 신뢰 잠식할뿐


솔직히 말해 검찰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는 핵심에서 벗어났다. 당시 이씨를 살릴 수 있는 국가 권력은 대북 핫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대통령, 안보실장, 국정원장뿐이었다. 돈독했던 '문재인-김정은'의 관계를 감안할 때,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접촉했다면 김정은은 사과문 대신 이씨를 보냈을 수도 있다. 이씨 송환을 위한 대북 접촉 흔적은 없다. 이씨 사망 다음 날 새벽에 모여 월북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아침 보고를 받고 수용했을 뿐이다. 국민을 살려내야 할 의무를 월북 추정으로 덮었고, 월북 추정의 정당성만 강조한다. 유족들의 상처는 더 벌어졌고 원한은 더 깊어졌다.

제1야당의 여의도 문법은 정권의 법치 문법에 대한 저항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법치 문법으로 정치 문법을 해체하자, 제1야당의 권력이 흔들리고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주춤하고 진영이 어수선하다. 민주당 사람들이 국문법을 몰라 여의도 문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닐 테다. 정권의 법치 언어를 타격해 진영을 보호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수치를 감수할 정도로 신성해서다. 하지만 말 같지 않은 말은 신뢰 자본을 잠식할 뿐이다. 여의도 문법으로 무장한 민주당 저격수들이 한동훈 한 사람에게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이유이다. 민주당은 문법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