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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 채널마다 이혼 남녀들을 등장시킨 관찰 예능을 방영한다. 예전엔 이혼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던 스타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혼을 떳떳하게 밝히고 활약한다. 이혼을 불편하게 바라본 사회적 시선이 완전히 바뀐 덕분이다.

이혼을 금기시 했던 봉건적 잔재를 법으로 금지한 지는 오래됐지만, 이혼 자체를 일상으로 수용하는 의식 개혁은 최근의 일이다. 우선 신세대 여성은 남자 중심의 혼인 유지 관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혼에 집착하지 않는 마당에 이혼을 두려워할리 없다. 구세대 여성도 전근대적인 혼인관계를 더 이상 참지 않고 황혼 이혼을 감행한다. 남녀 모두 세대를 넘어 불행한 일부종사를 인생의 낭비로 본다. 2012년 이후 10년 동안 한 해에 10만쌍 이상이 이혼한다. 바야흐로 '돌싱(돌아온 싱글)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혼에 관대해진 의식 전환의 속도에 비해 사후 관리를 위한 제도는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자녀 양육문제가 가장 크다. 양육비 지급 약정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이행을 강제하려는 '배드 파더스'라는 익명의 단체는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2020년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는 법이 통과됐지만 실효가 떨어진다니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혼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배우자의 생계도 해결할 문제이다. 법원의 이혼 위자료 판결이 보수적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지난 6일 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이혼을 결정하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판결로는 역대 최고액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노 관장 요구액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 50%를 요구했는데 평가액이 1조3천억원을 넘는다.

해외 슈퍼 리치들의 이혼 재산 분할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는 이혼한 부인에게 수백억,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분할해줬다. 주목할 것은 금액이 아니라 기준이다. 미국에서는 양육비와 생계비 지급을 못한 이혼 배우자들의 파산이 흔한 일이라 한다. 이혼은 자유이지만 책임은 무겁다.

유책 배우자의 경제적 책임과 의무에 관대한 법원 판결로 이혼의 자유가 위축되고 이혼 빈곤이 만연할까봐 걱정이다.

/윤인수 논설실장